244. 사는 데는 이유가 없다

by 장용범

목적이란 말을 달리 해석하면 ‘존재의 이유’라고 한다. 전등의 목적은 불을 밝히는 것이고, 의자의 목적은 앉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것들은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을 벗어나 자연으로 넘어가면 목적이나 존재의 이유를 붙이기엔 무리수가 따른다. 태양의 목적은 무엇인가 태양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물을 때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지나친 아전인수격 해석이 되고 만다. 별은 왜 존재하는가,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질문부터가 좀 이상한데 그것은 태초에 생겨나 그냥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태어났으니까 존재하는 거지 달리 할 말이 없다. 이처럼 애당초 없는 것을 자꾸 찾다 보면 결국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종착역에 이르게 된다. 그게 뭔가? 사라짐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그러니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은 그냥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들도 있음을 받아들이자. 자연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다. 오죽했으면 자연이란 한자가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이겠는가.


삶에는 목적이 없다.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태양이나 달이 존재하듯 사람도 그냥 존재하고 살아가면 된다. 괜히 있지도 않은 삶의 목적이니 존재의 이유를 찾느라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다. 태어났으니 그냥 살면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남는다. 비록 삶에는 목적이 없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방법론적인 문제는 남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일단 육체를 잘 유지해야겠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살아있는 동안 큰 고장 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 이게 되어야 다른 것들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만 챙기기에는 좀 허전하다. 그러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한평생 내 육신만 챙기다 가기에는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 외에도 존재하는 것들이 많다. 이제 그들과의 관계를 하나씩 맺어간다. 이것을 인연 맺기라고 하자. 그게 다른 사람이든 자연이든 아니면 물건이든 간에 우리의 인연 맺기는 정말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이왕이면 서로에게 좋은 인연 맺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코로나처럼 인간이 자연과 인연을 잘 못 맺으면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된다. 좋은 인연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인연이다. 어느 한쪽만 좋으면 좋은 인연이 아니다.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소통이 필요하다. 적어도 상대의 처지를 이해할 수준은 되어야 소통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소통은 어려우나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소통이 시작되고 소통이 시작되면 관계 맺음이 진행된다. 그리고 좀 낯선 경험들을 즐겨보자. 이것은 새로운 관계 맺음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데 어둡고 무거운 의무감으로 칙칙하게 살아가기엔 우리 생이 너무 짧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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