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일은 놓인 형세가 가장 중요하고, 운의 좋고 나쁨은 그다음이며, 옳고 그름은 가장 아래가 된다.”
이익 <성호사설>
<운의 알고리즘>의 저자인 정회도님의 대담을 보다가 이익의 성호사설 한 구절이 탁 걸렸다. 인간의 역사는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접하는 역사기록물을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한 시대의 큰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시간이 지나면 꼭 집필하는 것이 회고록이다. 가장 최근에는 <조국의 시간>이 있었고,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도 있었다. 이외에도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으로 인물들의 회고록이나 역사적 증언이 나오곤 한다. 현대사 중에는 유신정권이 무너진 후 일어난 12.12사태를 보면 군부의 어느 줄에 섰냐에 따라 그 후 그들의 인생이 많이 달라지는 것도 본다.
저자는 운이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흐름이기에 그 흐름을 타라고 했다. 운이 상승의 기운을 탈 때는 많은 시도를 해보고, 하강국면에서는 삼가고 응축하는 준비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이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마다 타고난 운은 다르게 마련이다. 세상을 알 즈음에 나는 왜 금수저가 아닌가 하고 한탄해 본들 달라질 것은 없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내딛는 한 발짝이 너무 무거워진다. 그러니 자신의 주어진 운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에도 최초에 주어진 달란트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달란트로 얼마나 성과를 내었냐가 핵심이었다. 나는 성경의 그 문장을 보며 만일 주어진 달란트로 투자를 했다가 실패했다면 주인은 벌을 주었을지 격려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운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노력보다 더 많은 걸 얻는 사람이다. 그리보면 지난 나의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좋았던 사람 같다. 나의 객관적인 지표들은 그리 내세울 바 없지만 매번 적절한 선택을 해 왔고 그 결과 나름의 성과를 잘 챙기며 살아온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저자의 대담을 들으면서 나에게 대입해 보니 과연 그랬다 싶었던 일들이 있다. 운은 천, 지, 인의 삼박자인데 하늘이 의미하는 타이밍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환경에 해당하는 지(地)는 어느 정도 개인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근무지 이동을 한다거나 청소나 가구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살아오면서 꽤 많은 곳을 옮겨 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부산, 울산, 창원, 거창, 김해를 거쳐 지금의 서울에 왔는데 서울에서도 한 곳에 지긋이 근무하기보다는 서울역, 강남의 역삼, 선릉, 서대문, 충정로 등 한 곳에 평균 근무기간이 2-3년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건 거의 역마살 수준이다.
운이란 고정적이지 않고 늘 움직이기에 운이라고 한다. 이익 선생의 말씀처럼 옳고 그르다는 것 이전에 형세가 있고, 운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저렇게 착한 사람이 왜 저리 안 풀릴까라고 할 게 아니라 세상을 읽어내는 힘이 부족함을 탓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