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지난 노래지만 조성모의 “가시나무”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노랫말은 한 개인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듯이 심지어는 스스로도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라는 대상은 평생을 탐구할만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짓는 인간은 타인의 평가와 신뢰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게끔 진화되어 왔다. 원시시대에 사는 한 인간이 무리에서 배척된다는 것은 위험한 자연에 홀로 남겨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무리에서 인정받고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했을까? 다른 이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일관성 있게 해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행동일지라도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칭찬받는 속성의 하나로 발전해 왔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나 행동에 일관성이 결여되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조성모의 “가시나무”처럼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나라는 존재가 있다. 단지 MBTI유형이나 혈액형, 별자리 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나라는 존재들이다. 심리학 대담에서 “자기 복잡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개인의 세계가 다양할수록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힘이 강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여기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이 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긍심이 대단하고 직장 이외의 세계를 생각도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구조조정으로 잘리는 날이 왔을 때는 어떠할까. 그는 자신의 유일한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직장이라는 세계 외에는 생각을 못해 봤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대부분의 성실한 직장인들은 직장 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에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뭔가 해선 안될 것 같은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심리적으로 일관성 법칙에 위배라는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투잡, 쓰리잡을 가지란 말은 아니다. 그래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가 막히면 다른 것을 열어가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기의 세계가 하나인 사람들은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일관성 있게 가는 오직 한 길이 효율성 면에서 좋을 수도 있지만 그 길이 끊겼을 때는 다른 대안으로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세상의 길이 얼마나 많은데 오직 한 길만 있겠는가. 요즘 나는 다양한 길을 시도해 보고 있다. 한 가지 원칙이라면 끌리는 것 위주로 하고 있다. 하다가 재미있으면 계속하고 아니면 그만둔다. 그런데 이게 나름 긍정적이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되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확장성도 생겨난다. 세상일은 내가나아 가는 것만큼 넓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