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리스트(wishlist)는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둔 목록을 말한다. 세상에는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구성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젊을수록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 같다. 노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은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은 동력이 그만큼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갈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노인들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것도 볼썽사납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포지셔닝된 나의 위치가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생활 대부분을 영업 관련 업무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으며 호텔 행사나 국내외 여행 등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하였으니 그동안 일을 참 재미나면서도 화려하게 했던 면이 있다. 그렇게 그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작년부터 후선부서에 배치되어 남은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생각하니 이만큼 적절한 직장생활도 없는 것 같아 지금의 상황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2-3년 전부터 회사 생활과 나의 생활을 분리하기 시작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위주로 조금씩 개인적인 관심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평가받을 목적은 아니니 허접해 보이지만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게 묘한 활력을 준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크게 인정받는 일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몰입감을 느끼며 하는 일들이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내가 한 발을 드리니 그곳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나를 반겨주었다. 직장에서의 인연들은 내가 관두고 나면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내가 그 분야에 관심을 두는 한 계속 교류가 이어질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 인생을 좀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침에 봉수대를 오르며 앞으로 나를 규정지을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작가, 여행가, 사회활동가라는 것이 떠올랐다. 사회활동가는 그동안 생각을 안 했던 영역인데 지난 주말 독거노인의 집을 청소하며 느낀 바가 있어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접근하는 사람과 내가 못할 게 뭘까로 접근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다를 것이다. 한 개인에게는 절망감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이 무망(無望) 감이라고 한다. 절망은 그나마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무망이란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망은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무력감은 삶을 살아갈 힘이 없다고 여겨져 쉽게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움직여야 한다. 처음에는 하찮아 보이는 작은 일이라도 조금씩 하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 모른다. 3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3층의 경치를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