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나의 외국어 학습 흑역사

by 장용범

중학교 때 처음 영어를 배웠다. 당시에는 선행 학습이란 것도 없을 때라 그냥 중학교에 올라가서 영어를 배웠다. 한글과는 달리 꼬부랑글씨로 필기체를 쓰는 게 신기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영어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 때까지 리듬에 맞춰 크게 낭송을 해야 했다. 마치 서당의 학동들처럼. “아이 엠, 유 아, 히 이즈, 쉬 이즈, 잇 이즈, 위 아, 데이 아 (I am, you are, he is, she is, it is, we are, they are)” 당시 영어 선생님은 Be 동사를 그냥 입에서 툭 튀어나오도록 달달 암기를 시켰다. 영어를 천자문 외듯이 문법적인 변화 외우기부터 시작했으니 완전 주입식으로 영어를 시작한 셈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 마이 미 마인, 유 유어 유 유어즈 (I my me mine, you your you yours)를 외우고 있을 정도이니 내가 영어를 제대로 배운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올라갔다. 누구나 보는 “성문 종합 영어”를 야심 차게 시작했다. 하지만 늘 책의 앞에서만 왔다 갔다 했고 학교 진도와 내 진도를 따로 하려니 버겁기만 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혼자 공부하면 더 좋을 것 같았고 학교 공부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하지만 대학 갈 때 처음으로 내신성적이란 것이 반영되다 보니 학교 시험을 소홀할 수도 없었는데 당시 동기생 중 몇몇은 아예 자퇴를 하고는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을 하는 이도 있었다. 교련과목이 있고 선생들의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었으니 정말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라곤 없었다. 성적 떨어졌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뺨 맞은 기억만 강렬하니 그런 선생들에게 무슨 애정이 남아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여름방학 때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골라 열 번 정도 반복한 덕에 영어 성적은 괜찮았고 영어에 대한 흥미는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 후 회사 포상 여행으로 중국에 갈 일이 있었다. 단체여행으로 일정에 맞춰 다니는 것도 피곤하고 짜증이 날 즈음 가이드에게 몇 마디 중국어를 익혔다. “얼마예요?” “비싸요.” 글자는 모르겠고 음으로만 “뚜어 샤오 첸?” “헌 꾸이” 두 마디만 익혀 상인들과 흥정했는데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더 재미있었다. 역시 외국어는 현지서 써먹어야 제 맛이었다. 배낭여행으로 호주에 갔을 때도 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 생각엔 한 달 정도만 더 머물러도 듣기와 말하기가 상당히 늘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외국어를 그 나라가 아닌 곳에서 배우는 건 정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가끔 외국에 나가지도 않고도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정말 대단한 끈기의 사람들이라고 본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국내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은 일단 수준에 맞는 외국어 교재 한 권은 떼는 걸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학원 도움을 받든 독학을 하든 일단 책 한 권을 열 번 정도 반복하면 그 외국어 뼈대는 세워진다. 다음은 단어의 확장인데 최소 300-500개의 일상 단어만 알아도 그럭저럭 여행 다닐 때 대화는 되는 수준이 된다. 그중에서도 숫자는 별도로 익혀야 하는데 거의 반사적으로 나올 정도는 되어야 한다. 결국 중학교 첫 영어 수업처럼 외국어는 입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오도록 외우는 수밖에 없나 싶다. 안현필 선생은 “영어실력기초”에서 단어와 영작을 무척 강조했는데 이는 한글을 보고 영어가 툭툭 나올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온갖 멀티미디어로 외국어를 배우는 요즘 세대와 달리 오직 책으로만 외국어를 접했던 나에게는 제2 외국어도 역시 책이 편한 것 같다. 배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서인가 보다. 한글과 외국어의 1:1 매칭으로 배우는 답답한 외국어 학습법이지만 그게 나에게 적합한 학습법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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