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나의 관심은 변해간다

by 장용범

한 번은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책장을 보면 그동안 아빠 관심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이는 것 같아.” 다른 집에 비해 책이 좀 많긴 하지만 무심히 지냈을 것 같은 아이가 그간 내가 사 모았던 책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는 게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책장의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주제가 참 다양하긴 했다. 주로 경영이나 자기계발서가 많은 편이지만 우주, 물리 같은 자연과학 책도 더러 있고, 철학이나 불교, 심리, 명상 서적이 집중적으로 보이다가 최근에는 중국, 러시아, 은퇴 관련 책자가 자주 보인다. 정말 아이의 말대로 내 관심사가 이동한 게 한눈에 보이는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저것들을 읽긴 한 것 같은데 머릿속에 남아 있긴 한 건가라며 책 읽기에 대한 약간의 회의도 든다.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한다. 혹시 다시 꺼내볼 것 같아서다. 아내가 책 좀 버리라고 할 때마다 시늉은 하지만 버릴만한 책이 몇 권 안 되는 것 같다. 책에 관해서는 이것도 약간의 저장 강박증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용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한 때 고민했던 그런 주제들로 오늘을 잘 살고 있으려니 스스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시기별로 저런 주제들을 고민할 때는 그만한 계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50대를 넘긴 후에는 주로 불교나 심리, 철학에 대한 책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책들을 구입하는 편이다. 이것도 계기가 있다. 주변 친지나 지인들의 죽음을 접하기도 했고 나 스스로 두 차례나 수술대 위에 눕는 일을 겪다 보니 존재의 차원에서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우연히 떠난 블라디보스톡 여행으로 대륙이라는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가슴 떨리는 화두를 품게 된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때 늦은 서울살이로 도서관이나 각종 세미나를 통해 나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졌다는 데 있다. 서울에는 어떤 주제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 관련 모임이나 세미나가 한 두 개쯤 반드시 있어 그들과 새로운 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리 보면 서울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 같다. 내년 비록 은퇴를 하더라도 내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살아 있는 한 시간이 무료하다 거나 심심하진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친한 직장 후배로부터 은퇴 후 삶을 너무 장밋빛으로 그린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모든 존재에게 자명한 죽음이란 걸 생각하면 은퇴란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숙제를 어느 정도 마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시간 같기도 하다. 그래 봤자 육신이 그나마 활동할 수 있는 10년 정도이다. 나이 70대에 접어들면 마음먹은 대로 뭘 그리 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요즘 관심거리에 대한 책을 하나 뽑아 본다. 사이토 다카시라는 분이 쓴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는 책이다. 밑줄을 꽤 많이 그었던 책이다. 아무 데나 펼쳐 든 그곳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제 ‘좋아요’는 필요 없는 나이다. 50세가 되면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타협해야 한다. 아니 단정적으로 말하면 나이가 쉰쯤 되면 이제 남에게 승인을 받는 데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느끼는 마음이 예전과 좀 달라졌다. 부럽다는 마음이 아니라 “당신 좀 열심히 살았네” 정도의 마음이다. 누군가의 성과나 지위에 대한 부러움이 없어지는 시기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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