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는 날이었다. 부정맥 시술 후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고 있다. 며칠 전 병원서 보내 준 문자를 보고서 벌써 6개월이 지났나 싶었다. 6개월에 한 번씩은 나에게 몸 좀 챙기라는 경보의 메시지로 여기기로 했다. 코로나로 병원 출입구는 제한되어 열려 있고 응급실 앞의 의료진들은 이 더위에 파란 방호복을 입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로 사직하는 의료진도 늘어나는 것 같은데 저 방호복을 보니 이해할 만도 하다. 병원은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겸손하게 만드는 곳이다. 자신의 몸이지만 내가 모르고 아프지만 왜 아픈지 모른다. 의사 선생의 말 한마디를 긴장하며 경청하게 되는 이유이다. 아픈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살아있으니 병원을 찾는다. 좀 더 살고 싶어서 아프고 싶지 않아서 찾는 곳이 병원이다. 건강할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듯이 내가 내 몸을 의식하기 시작할 즈음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보면 의식하지 않는 몸의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건강 상태인 것 같다.
그럼에도 평소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가끔 돌아볼 필요는 있다. 세상에는 그 당연한 것들이 없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병원 입고서부터 아내의 부축을 받아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젊은 40대 남성이 눈에 띈다. 심장혈관병원에 저 상태로 들어온다는 건 평생 후유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기실 뒷자리에 앉은 노부부의 대화를 듣게 된다. 환자로 보이는 부인의 짜증을 묵묵히 받아내는 남편의 모습에서 남편의 배려를 본다. 평소 아무리 좋아도 내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게 인간이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거침없이 도심을 달리던 엠뷸런스도 병원에 도착하면 얌전한 모습으로 변한다. 어떤 면에서 병원은 인간의 오만을 심판하는 최후의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염라국이 있을지 모르지만 있다면 아마 병원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환자로 들어오는 인간들은 죄다 한 풀 죽어 들어오니 하는 말이다. 심전도와 혈압을 체크하고 의사 앞에 앉았다. 정상이라는 소견과 함께 계속 먹는 약을 추가로 처방해 준다. 건강 관리 잘하고 내년 2월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동안 하지 말라는 술자리도 제법 가졌는데 마음 한편에 찔리는 면도 있다. 이번 주는 코로나 백신까지 맞았으니 병원을 두 번이나 들른 특이한 주간이었다.
마지막 처방전을 받아가라는데 수납처 구조가 예전과 좀 달라졌다. 있어야 할 수납처 카운터가 줄어들고 키오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등록번호 바코드를 갖다 댔더니 기계가 알아서 처방전을 발급하고는 미리 등록되었던 신용카드에서 결제까지 끝낸다. 그러고는 기계 속의 그 여자는 나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한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라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그녀가 얼굴을 내밀리 없다는 걸 알기에 쭈뼛거리며 나왔다. 그 수납처 직원들은 이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려나. 요즘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 좋은 일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