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지금 여기” 내가 있다

by 장용범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은 두께에 비해 울림이 큰 책이다.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요즘 딸아이가 보는지 주위에 돌아다니기에 휘리릭 넘겨본다. 물건과 사람의 시절 인연에 대한 이야기에 눈이 멈춘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 같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둔감해지고 무뎌지게 마련이어서 읽긴 했지만 가물가물하게 마련이다. 물건과 사람의 시절 인연이 있듯이 책의 문장도 시절 인연이 있는가 보다.

언젠가 SF영화 하나를 소개받았다. 사람이 죽을 때 그 머릿속의 기억을 컴퓨터에 죄다 다운로드하여서 관리하며 그 기억 속에 유토피아적 환상을 심어 편안한 영생을 누리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의 정체성을 개개인이 가진 기억이라고 한다면 망각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슬픈 일이라 여겨진다. 나에겐 90세를 넘기신 고모님이 한 분 계시다. 젊었을 때는 무척이나 활동적인 분이셨지만 지금은 치매가 좀 심하시다. 상대와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도 문득 누구신지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기억을 잃어가는 인간의 가치를 그 이전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이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그러했다. 한 시대의 헤게모니를 주도한 인물이었지만 마지막엔 기억을 잃어가는 파킨슨병을 앓다가 죽었다. 자신의 배우자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레이건이라는 노인을 대통령 시절 레이건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그에게는 대통령 시절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겉모습만 레이건일뿐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대통령 레이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던 레이건 대통령은 누구인가? 레이거노믹스로 세계경제를 살리고 소련연방 해체 후 미국의 패권을 이끌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만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비록 눈앞에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다고 해도 그러하다. 이것은 기억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나는 기억에만 존재하는 허상에 불과하다.

둘째는 기억을 잃은 사람 그 자신에 관해서다. 그는 비록 과거에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을 못 하지만 지금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 웃다 우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는 과거 소련과의 냉전체제에서의 승리보다도 눈앞의 케이크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 달달한 케이크를 먹을 때의 행복감은 그에게는 실재하는 생생한 현실이다. 과거 어떤 정치적 업적보다 더 실재하는 행복인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정치적 업적은 실재하는 것이고 지금의 케이크의 달콤함은 거짓일까. 아니다. 하나는 과거에 실재했던 현실이고, 케이크는 지금 실재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이내 지나가고 기억 속의 허상으로 남게 된다.

이미 겪었던 인간의 과거가 이러하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는 더더욱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은 순간순간 살아있을 뿐이다. 과거로 넘어간 사건들은 나와 너의 기억에만 존재한다. 그 마저도 스스로가 기억을 못 하는 상태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남은 기억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시 법정스님의 ‘무소유’로 돌아간다. 물건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시절 인연이란 그 시절이 끝나면 멀어진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인연을 다시 만났다 하더라도 상대는 과거의 그가 아닌 새로운 인연인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를 30년 후 다시 만났다면 그는 이제 새로운 시절 인연으로 맺어야 할 사람이다. 시절 인연은 오직 이 순간 내 주위에 있는 인연들이다. 그러니 잘 대해주어야 한다. 정말 귀한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물건이라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