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창문가 스툴에 자주 앉는 편이다. 밖의 거리 풍경을 가감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창문은 안에서 밖을 보기 위한 장치이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는 없기에 오직 보기만을 위한 제한된 기능의 문이다. 중국 북경을 여행했을 때 후통이라는 골목여행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한옥마을처럼 중국의 옛집인 사합원이 모여있는 골목이었다. 당시 그 집들을 보고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높은 담벼락에 밖으로 난 창문이 없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사각형 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방들을 배치했고 뜰에는 작은 정원도 조성되어 있는 등 나름 아기자기한 맛은 있었다. 하지만 외부를 바라볼 수는 없는 가옥 구조라 한옥과 차이가 느껴졌다. 서울에도 경복궁 근처에 한옥 마을이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한옥은 좀 다른 구조이긴 하지만 오래전에 지어진 한옥들은 역시 벽이 높고 창문은 위에 조그맣게 배치한 구조이다. 남쪽 지방의 한옥은 담이 높은 구조는 아니기에 이 역시 좀 특이하다 여겼지만 북경의 기옥 구조는 아예 폐쇄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창문은 본다는 행위가 없으면 햇볕을 받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요즘은 통유리로 만든 창문도 많아 예전처럼 바람을 들이는 역할이 없는 구조도 많다. 인간에게 본다는 것은 무척 강한 욕구인 것 같다. 사람의 오감 중에 눈으로 가장 많은 정보가 들어온다고 하니 집의 구조도 자연스레 인간의 본능을 반영하는 식으로 발전했는지도 모른다. 가끔 고급 주택가를 지날 때면 주택을 에워싼 높은 담장을 볼 때가 있다. 집이 좋다는 느낌도 있지만 스스로 가둬 놓은 감옥 생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건축가 유현준은 본다는 것이 상호작용을 거치지 않을 때 권력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그를 볼 수 있는데 그는 나를 볼 수 없을 때 나는 그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상당히 특이한 관점이었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보는 행위로 권력이 생기려면 누군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도 필요하다. 군대의 유격은 참 피곤한 훈련이다. 그런데 유격대 교관들은 한결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이 역시 훈련생들은 교관의 눈을 못 보지만 교관은 훈련생들을 보기에 그 자체로 유격장 내 권력이 생기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런 상황은 소통은 없고 오직 권력자와 그의 감시를 받는 자들로 나눠질 뿐이다.
창은 안에서도 보지만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다. 물론 선팅을 진하게 해서 안에서만 보이는 창문도 있지만 웬만한 카페는 양쪽 다 볼 수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안과 밖의 사람들은 말만 주고받지 않을 뿐 서로의 풍경으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딸아이를 토잌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북한산 인근 한옥 마을에 들렀다. 전망이 좋다고 소문난 카페에 일찍 들러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창을 통해 멀리 북한산 자락을 보았다. 문득 이 카페는 인간의 본다는 욕망을 이용해 장사하는 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커피 값도 비싸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그 전망 때문이다. 카페는 주변의 낮은 한옥들을 조망하고 멀리 북한산까지 볼 수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사람의 오감은 순차적으로 발동하는 것 같다. 제일 먼저 보게 되고 다음은 소리를 듣거나 향기를 느끼고 좀 더 다가가 만지게 되는 것 같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듯이 인간에게 본다는 행위는 거부하기 힘든 강렬한 욕망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