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입추가 지나고 이번 주 말복이 온다. 가을의 시작과 더위의 끝이라는 절기의 글자 뜻이 어쩜 이리도 정확한지 이제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지낼만한 수준이 되었다. 새삼 옛 조상님들의 지혜가 우러러 보인다. 코로나 사태와 계절의 나고 듬을 보면서 이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제 아무리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잘 난 체 한들 세상은 세상의 이치대로 돌아가고 있다. 요즘 ‘전현수 박사의 마음테라피’라는 강의에 꽂혀서 듣고 있다. 정신의학자인 강사는 붓다의 가르침에 현대 정신의학을 접목시켜 설득력을 더하는 것 같다. 최근 본 영상은 ‘세상의 이치’라는 주제였는데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세상은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으로 나누어지며 생명이 없는 것은 물리 법칙으로 움직이고 생명이 있는 것은 조건에 따라 움직인다. 이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의 순환도 물질계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 큰 우주에 비해 생명체는 참 미미한 존재인데 인간도 그에 속한다. 이러한 인간은 “나”와 “남”으로 구분되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나”를 동심원의 중심에 두고 “남”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으며 그 바깥을 우주와 같은 생명 없는 것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하며 전체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모습이 세상의 이치라고 했다.
전체 그림은 이해가 되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에 관한 너무도 간단한 불교의 가르침이 있다.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원인이 좋으면 즐거운(좋은) 결과가 오고, 원인이 안 좋으면 괴로운 결과가 온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좀 시큰둥해진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다. 그런데 가을의 문턱인 입추가 여름의 끝인 말복보다 먼저 오듯이 원인에 따른 결과의 나타남은 아날로그처럼 시차가 좀 있는 것 같다. 천천히 바뀌어 간다는 말이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라는 것인가? 범부중생은 나에게 좋은 것은 “선”이고 나에게 안 좋은 것은 “악”이라고 여기며 살아가지만 붓다의 가르침은 그게 아니었다. 불교에서의 “선”은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을 말한다. 생명체도 좋고 공기나 바위처럼 생명 없는 것들도 좋은 것을 ‘선’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지금의 코로나도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자연을 훼손한 결과임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나는 좋은 데 남이 안 좋거나 남은 좋지만 나는 안 좋은 것을 불교에서는 ‘악’이라 규정하는 것 같다. 상호작용으로 유지되는 세상의 이치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을 추구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오직 나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불행을 초래한다. 세상은 나와 남, 생명이 없는 것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세계를 온통 자신에게만 한정 지으면 다른 것들과의 작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지내는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