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구분되어지다

by 장용범

구분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기도 하다. 최진석은 그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유럽에서 중세와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적 언급 이후라고 했다. 이 시기부터 인간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고 그 시대를 사람들은 근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시대를 구분한다는 것은 한 시대를 살던 인간들을 구분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들이 가진 세계관의 구분이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는 사람들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 전자는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이겠지만 후자는 이성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힘이 생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보면 지금의 시대는 2021년이지만 인간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여전히 근대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겠다. 과학과 기술은 이성의 산물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부산물을 향유하는 가운데 인간 이성을 절대시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시대를 중세와 근대로 구분하듯 한 개인도 그의 일생을 시기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생각도 달라진다. 유년시절을 돌아보면 지금 내가 지닌 생각의 격차를 알 수 있다. 몸은 성장했고 생각은 성숙해졌다. 그런데 그 분기점은 언제부터였을까? 생애주기별로는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지만 그것은 신체변화와 사회 속의 역할 중심으로 나눈 것이고 가치관이나 생각의 변화는 개인마다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인도의 경전 베다에는 인간은 세 번 태어난다고 했다. 출생으로, 영적 교육으로 마지막은 죽어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출생 이후 제도권에서 배우는 과정은 육체의 건사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지만 영적 교육으로 두 번째 탄생은 누구나 거치는 단계는 아닐 것 같다. 그냥 출생 이후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아서다.


그 정도의 깊이는 아닐지라도 내 생에 두 번 정도의 분기점은 있었던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경제적 독립이었던 것 같다. 나에겐 그 시기가 좀 빨랐었는데 만 23세 군생활을 통해 첫 장교 월급을 받았을 때이다. 그 후로 취업하고 지금껏 이어졌으니 지금의 세태로 보면 무척 빠른 경제적 독립인 셈이다. 아무리 부모의 재산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라도 성년이 되었다면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는 있어야 독립이 된다.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만큼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즘 청년들의 백수 상태가 염려되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간은 누구나 홀로 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기적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 나는 부모님의 큰 사고와 수술을 어렸을 때 겪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곁에 있는 가장 든든한 사람들이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는데 더 이상한 것은 부모님의 사고를 통해 나를 더 걱정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사실 이게 더 놀라웠다. 벌어진 상황은 부모님을 염려해야 하는데 마음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를 구분하는 분기점이 있듯 개인의 삶도 그런 계기가 있다. 그리고 그 전과 후는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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