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 인사 해프닝이 있었다. 갑자기 부산 사무소장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연도 중에 그런 일이 있다는 건 예외적이긴 하지만 인사 측에서는 그만큼 급하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어렵사리 말을 꺼낸 인사팀장에게 조직이 원한다면 가기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예외적이니 만큼 그쪽에서도 많은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대표이사 결재 전에 당사자 의견을 묻는다고 했지만 내심 각오는 했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키로 했다. 부산에 사시는 부모님이 연로하신데 자주 뵐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가봤자 내년이 은퇴니 회사생활 마무리를 연고가 있는 부산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이동 발령이란 게 이것저것 고려할 게 많다 보니 오전에 일이 손에 안 잡히긴 했다. 점심시간 즈음 인사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대표이사께서 올해는 내 업무의 중요성이 크다며 다른 대안을 정하셨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세상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 살면서 얻은 교훈이지만 그런 일을 대하는 마음은 그 상황을 부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일이 일어난 긍정적 의미는 무엇인지 찾으려고 한다. 어떤 일의 의미는 내가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알기 때문이다. 인사 해프닝도 좀 뜬금없긴 했지만 의미를 부여하자면 꽤나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일에는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는 법이다.
퇴근 무렵 고향 후배인 김 차장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의 인사 해프닝을 소재로 소주를 한 잔 하는데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묻는다. “형님, 은퇴하면 뭐 할 겁니까?” 자신도 은퇴시기가 다가오니 나의 은퇴 계획이 궁금했나 보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할 일은 좀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하는 데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워둔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벌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위해 직장에 소속되어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것이니 일이 없을 것 같진 않다. 그리고 그 일을 돈벌이와 상관없이 할 것이기에 크게 얽매일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돈도 생기면 좋은 일이다. 그냥 일 자체에서 보람을 찾겠다고 정하니 세상에 그런 일은 지천에 보인다. 하고 싶은 것도 정신 멀쩡하고 몸도 건강해야 할 수 있는데 과연 그 기간이 남은 인생에서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리 길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겁의 시간과 미지의 운명 앞에 인간의 계획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앞으로 뭐 할 거냐는 질문에는 ‘그건 그때 가서 보자’가 적당한 답같으다.
퇴근해서 집에서 쉬는데 반가운 전화가 왔다. 광주에 살고 계신 은퇴하신 옛 상사셨다. 보고 싶어 연락했다며 9월 초에 서울에 갈 테니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신다. 10년이 넘도록 직장의 인연이 이어져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선후배들이 있으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