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일의 두 가지 기쁨

by 장용범

일에는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 실현 가능성은 사람마다 다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주 드문 특강을 하나 들었다. 이미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이 직접 특강을 했었던 한 시간 가량의 자료였다. 지금의 울산 현대조선소를 짓게 된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본인의 입에서 직접 듣게 되니 감동이 새로웠다. 5만 분의 1 갯벌 항공사진을 들고 와서는 ‘여기에 조선소를 지을 건데요. 당신이 배를 주문해 주면 나는 그 주문서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릴 거구요.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지으면서 당신 배를 만들어 드릴게요.’ 누군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분명 기획 부동산을 낀 사기꾼으로 볼 것 같다. 그에 대해선 정주영 회장도 할 말이 없는지 자기처럼 어느 미친 사람이 하나 걸려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단순히 한 사람의 열정만 보고 3500만 불 짜리 배를 두 척 주문할 미친 사람은 없다. 정주영 회장이 설득한 내용을 직접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다. 영국의 기술재단에서 검토 결과 우리에겐 조선소 지을 능력이 있다는 조사보고서를 내줬다. 그리고 버클리 은행은 그 조사보고서에 근거해 돈을 대출해 주기로 했다. 다만 국가 간 차관 자금이 되다 보니 은행에서는 영국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한데 그 보증기관에서 그러더라. ‘당신들이 어찌어찌 조선소를 만들었다 치자. 하지만 세상에는 당신들 말고도 조선소가 많은데 어느 누가 배를 만들어 본 경험도 없는 당신들에게 배를 주문하겠는가. 그러니 배 주문서를 가져오면 그때 보증을 하겠다.’ 그래서 당신은 배만 주문하면 된다. 배를 주문해 기일 내 배를 받게 되면 좋은 것이고, 만일 못 받는다 치면 위약금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내가 배를 주문하는 입장이라면 내 앞에 있는 저 동양인이 조선소를 짓든 말든 상관없이 나는 이익을 볼 수 있는 투자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안 될 가능성이 높아 계약금만 걸고도 위약금을 챙길 수 있는 꽤 괜찮은 투자 같다. 이처럼 일의 시작은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일의 실현 가능성은 진행해 가는 중에 점점 높아지게 된다. 일이란 자리에 앉아 이 일이 과연 될까 좌고우면 머리로만 생각해 본들 안 될 이유만 떠오르는 것 같다. 이건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은행에 있을 때의 일이다. 승진을 하고서 연고도 없는 시골 군지부에서 영업추진을 담당하게 되었다. 영업은 나름 잘 되었는데 하루는 프로모션에 기업카드 추진이라는 것이 떴다. 직원들은 기업도 없는 시골에 저건 무리라며 모두들 만류를 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대체 기업이란 무엇인가. 꼭 공장에 직원들이 있어야 기업은 아니다. 작은 식당을 해도 사업자등록증을 내걸고 사업을 하면 그것도 기업은 기업이다. 카드 발급대상으로 하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영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는데 그 해 우리는 기업카드 추진 1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나중에 프로모션을 걸었던 측에서는 정말 의외라며 당연히 기업이 많은 공단지역에서 1등이 나올 줄 알았는데 우리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다시 정주영 회장의 말씀이다.

“우리가 일을 할 때는 두 가지 기쁨이 있습니다. 일이 순조로울 때는 일이 잘 돼서 좋고,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그것을 해결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지금의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꼭 부정적인 영향만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전체적인 국가 시스템이 검증되어 세계에서 공식적인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들은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보던 미국과 유럽, 일본의 민낯을 보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모를 큰 자산들이다.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표식은 세계적으로도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으니 불과 2년 사이에 달라진 우리의 위상이다. 세상의 일은 이리 볼 수도 있고 저리 볼 수도 있다. 무조건 긍정이나 낙관적으로 보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볼 필요는 있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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