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일상을 보여주는 ‘스님의 하루’라는 글을 보니 이번 정토회에서 짓는 건물이 완공되면 시설 운영을 위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나 보다. 정토회의 운영원칙은 오직 회원들의 자원봉사를 기반으로 하기에 만일 고용을 해야 할 상황이면 당신은 그 건물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처음 건물 지을 때 스님의 반대가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래서 요즘 운영진은 고용 없이 시설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나 보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날지 궁금해진다. 내 생각엔 스님의 원칙이 꺾일 것 같진 않고 어떡하든 자원봉사만으로 그 건물이 유지되지 않을까 한다.
‘당신의 삶에는 원칙이 있는가?’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일관되게 지켜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어제는 지켰지만 오늘은 지키지 않는다거나 왜 나만 지켜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지키지도 않는데라며 물타기 하는 태도는 원칙이 아니다
그러면 원칙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은 법칙이라 하겠지만 만일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멈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의 심장이 반복적으로 뛰지 않고 생명을 가진 존재가 제 자식을 낳고 돌보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또 어떠할까. 이러한 예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이 매일 출근하는 것이나 학생이 학교 가는 것을 마음대로 해버리면 그 조직에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법칙이나 원칙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 아주 많다. 이것을 달리 보면 일관성을 가진 것들은 그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삶의 원칙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원칙을 가졌다는 것은 삶의 방향이 일관된다는 것이고 일관되다 보니 강한 힘이 생겨난다. 자연계에서 힘이란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결국 삶의 원칙을 가진 이는 자신과 주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셈이다. 그러면 어떤 원칙을 가질 것인가. 이것은 제각기 다르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원칙이 달라진다. 가치를 오직 돈에다 두고 삶의 원칙을 정한 사람이라면 돈이 되면 무조건 한다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권력에 유일한 가치를 둔 사람들이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간의 살육도 저지르는 예를 숱하게 보게 된다. 결국 ‘당신의 삶에 원칙이 있는가’라는 문제는 ‘당신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주위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삶의 원칙을 지키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원칙을 지켜가는 이들은 결국 주변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다.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삶의 원칙을 세울 것인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이내 사라질 것들에 가치를 둔 삶의 원칙은 좀 허무할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