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by 장용범

직장생활 중 대부분을 보험설계사 관리업무에 있었다 보니 전국적으로 많은 설계사들과 관리자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 몇몇 분들은 회사를 떠날 즈음에 작별 인사차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감사한 일이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마음은 좀 무겁지만 회사를 떠난다고 인연까지 끊을 이유가 있겠냐며 가끔 연락이나 하며 지내자고 한다. 그리고 앞날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는 말로 마무리 짓는다. 어려워진 영업환경과 회사의 설계사에 대한 처우 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허탈한 일이다. 설계사를 통한 영업은 영업도 영업이지만 그분들을 도입하여 육성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말이 20년이지 오직 그 일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끌리고 매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미련 없이 재미있게 보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좀 이상한 일이 있다. 직장생활 대부분을 보냈던 일의 결과가 저토록 쪼그라드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거나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한데 그런 마음이 없어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있을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바는 다 했다는 마음 때문이고 다시 하라고 해도 그 이상은 못할 것 같아서다. 다만 회사의 영업 분위기가 저렇게 가라앉아서는 안 될 텐데라는 염려는 있지만 이제 다른 부서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성질은 아닌 것이다. 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미련조차 안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다. 그동안 일이란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내 왔는데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어떤 일이든 그 과정에 미련이 없다면 결과는 부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 일이 일어나게 된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그 원인을 안다 모른다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일에는 그 원인이 너무도 분명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원인을 모르는 일에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일이 벌어진 다음이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미 벌어진 일이다. 여기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선택이 있다는 말이 적용된다. 불교적 관점에서 전현수 박사는 이럴 경우 ‘건강한 반응’을 하라고 조언한다. 일이 벌어진 후의 반응이 건강하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나락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늦잠을 잤다. 아무리 빨라도 사장님 주재 회의시간에 30분 늦을 상황이다. 이럴 경우 어떤 반응을 선택할 것인가. 건강한 반응은 일단 늦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서 현 상황을 단절하고 다음 선택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자책, 원망, 불안 등은 여기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한 반응이란 탐(욕망), 진(성냄), 치(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반응이라고 한다.


유시민 작가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 투옥되었을 때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독방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조용한 곳에서 그때 참 많은 책을 읽었다고 했다. 앞날에 대한 불안, 지금의 신세 한탄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일단 받아들이고 다음의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건강한 반응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내가 알든 모르든 그 일이 일어날 만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건강한 반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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