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 이 사람을 보는 마음

by 장용범

법원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다른 무엇보다 왜소하고 수척해진 모습이 인상 깊었다. 지난 1심 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흔을 넘긴 노인의 육체는 하루하루가 다른가 보다. 혈액암에 치매까지 앓고 있다 하니 앞으로 얼마나 살까 싶다. 지금껏 이 땅에 살아오면서 꽤 많은 대통령들의 화려한 등장과 퇴장을 보아왔다. 나의 정신적 성장에 따라 그들의 이미지도 각기 다르게 각인되어 있지만 전두환과 노무현이라는 사람만큼 인상 깊은 대통령도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은 살고 있지만 죽은 것보다 못해 보이고, 한 사람은 죽었지만 더 살아있는 것 같은 사람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10.26 사태로 갑자기 등장한 전두환이라는 사람은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육군 소장이었다. 강한 보스 기질을 기반으로 군을 동원해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을 재빠르게 수습했지만 한국 현대사의 큰 비극인 광주 사태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나이 구십의 치매 노인임에도 여전히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걸 보면 그의 생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등장 시기는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당시도 기억나는데 지금처럼 직선제는 아니었다. 유신정권이 만들어낸 대통령 간접선거 방식이었는데 학교 담벼락에 붙어 있던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뽑는 선거공보가 기억난다. 전국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이 서울의 장충체육관에 모여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간접선거 방식이었다. 그는 나의 중고등 시절과 대학 시절까지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갑자기 대학시험의 본고사가 폐지되고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졌으며 사적 과외가 금지되었으며 12시 통행금지가 없어졌다. 문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삼청교육대로 끌고 가 정신개조를 시켜대던 시절이었다. 그의 재임 당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고초를 치렀으나 정작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의 학창 시절은 학점과 장학금, 군 문제와 취업에 더 관심이 있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내가 특이한 게 아니라 주변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지금에야 586 민주화 세대라고 하지만 과연 그 당시 정말 시대적 소명의식을 지니고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싶다. 어쩌면 보수야당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당시 도서관에 있었던 학생들이지 않을까. 아웅산 폭탄테러도 생각난다. 당시 동남아 순방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이었는데 대통령은 살고 많은 장관들이 유명을 달리한 사건이었다. 이후 86 아시안 게임을 치르고 88 올림픽까지 유치하는 등 그의 대통령 시절 기억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의 가도를 타고 올라가던 시기였다. 한쪽에서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광주시민들과 민주 인사들이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직접적인 영향 없이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거부감이 없던 사람이기도 했다. 나중에야 지금의 민주화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시대가 한참 지난 후의 일이다. 가끔 아이들로부터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희화화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마나 그 시절 서슬 퍼런 시대를 지내왔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기 때문이다.


구십 노인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이 나라의 현대사가 저렇게 마무리되는구나 싶었다. 그와 더불어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나도 배가 불룩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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