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본전 생각이 날 때

by 장용범

한 직원이 일선 현장에 문서를 하나 시행했다. 그런데 출근 시부터 현장의 문의 전화가 폭주하기에 해당 직원을 불러 빈번한 질의에 대한 Q&A를 정리하여 한 번 더 문서를 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돌아오는 말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였다.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내 생각과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자신은 모든 내용을 문서에 담았고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인데도 그걸 못해 걸려오는 전화라고 했다. 게다가 여기서 기존 문서를 보완하는 문서가 더 나가면 일선의 혼란을 초래해 문의전화는 오히려 더 늘게 된다며 정보는 절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젊은 시절 내가 팀장에게 했던 말과 비슷했다. 그때 팀장이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잘 된 문서는 전달하려는 내용을 현장이 정확히 이해했는가로 결정되는 것이지 내가 아무리 잘 썼다고 해도 현장이 이해를 못 한다면 좋은 문서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나 역시 오래전 내가 들었던 말을 그 직원에게 그대로 해 주었는데 다만 시대와 사람이 달라진 탓으로 그 직원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나는 알았다며 돌려보냈다. 오후쯤 되니 그의 말대로 전화 문의가 줄어들긴 했다. 두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문서를 자세히 읽어보고 이해를 했거나 아니면 여느 문서들처럼 흘려버렸거나이다.


일선에 있다가 처음 후선 부서로 발령받아 갔을 때 옆의 선임이 나에게 조언을 했다. 본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현장에서 나의 업무에 좀 더 관심을 갖도록 붙잡아 두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인 게 본사의 각 부서는 한 가지 일을 하면 되지만 현장에서는 본사에서 시행하는 모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일선 생활을 돌아봐도 매일 많은 문서들을 접하게 되고 그중에 경중을 골라내는 것이 반복된 작업이었는데 제목과 처음 몇 문장만 보고 챙길 것과 흘릴 것을 분류하곤 했다. 회사의 일은 보통 문서로 돌아간다. 그런데 현장에서 내용 이해가 안 될 정도면 업무에 동맥경화가 생기게 된다. 그 직원은 현장의 그런 사정까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입사 초기부터 줄곧 본사 근무만 해왔고 스스로 완벽을 기하는 업무 스타일로 많은 일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의 눈높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눈높이에 맞춘 일을 하는 성향이라 몇 번이나 지적을 했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해도 되는 것이 중년의 나이에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요즘 직원들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편이다. 내가 일을 배우기로는 상사의 지시에는 일단 ‘예스’하고 수용했다가 자신의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는데 요즘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게 직원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상사의 감정에 약간 생채기가 난다. 쿠션 화법은 그래서 중요하다. “Yes, But~” 간단하지만 상대의 감정도 거스르지 않고 내가 취할 바를 얻는 방식인데 이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사에 대한 불만을 가진다. 자신은 일을 참 많이 하는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글쎄 그는 일의 50%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머지 50%는 인간관계이고 그건 상대에 대한 말과 태도에서 나오는 건데. 이런 사실을 지적하면 대우받고 싶은 꼰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때론 나도 꼰대 짓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직원들이 예상한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나도 본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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