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주말의 특이한 만남

by 장용범

주말 오후, 중국 찻집 라오상하이에 갔다. 수년 전 윈난 성 차마고도 트레킹을 한 인연으로 가끔 만나는 모임이 있어서다. 휘발성이 강한 게 사회에서의 인연들이지만 어떤 인연들은 오래갈 것 같은 인연들도 있다. 나의 운남 여행을 함께 한 인연들도 그런 인연일 것 같다. 경주에서 스님도 올라오셨고 오늘의 모임을 주도한 동갑내기 도사(?) 친구도 미리 와 있었다. 당시 여행을 함께 한 이들은 더 있었지만 자주 만나는 이들은 찻집 사장 포함 네 명 정도이다. 제삼자가 우리 모임을 본다면 그 조화가 좀 엉뚱해 보일지도 모른다. 스님 한 분과 머리 긴 남자 한 사람 그리고 일반적인 모습의 사람 하나. 우리는 가끔 그렇게 모여 차를 마신다. 어제는 중년의 여성 분도 계셨는데 인상이 참 평온해 보였다. 동갑내기 도사가 함께 모셔왔다는 그분은 역술인이라고 했다. 네 명의 방역 수칙은 지켰지만 참 재미난 모임이 되었다. 스님과 도사, 역술인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평범한 직장인 하나가 자리 잡은 모양새다. 그런데 차를 나누며 하는 그 대화가 너무 재미나다. 주제가 얼마나 다양한지 기(氣)의 흐름에서부터 인도 힌두교와 시크교에 관한 이야기, 달라이 라마가 산다는 네팔 다람 살라 등 대화의 소재가 다양하고 끊김이 없다. 인간(人間)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지만 이렇듯 마음 맞는 모임은 별다른 유흥거리가 없어도 대화 자체가 즐거움이다.


며칠 전 퇴근길에 아래층에 사는 어르신을 만났다. 그간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인사는 했지만 대화할 기회는 없었던 분이다. 그날은 마침 바람을 쐴 겸 나와 계신 것 같아 함께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70대 노인이신데 작은 기업체에서 일을 봐주다 얼마 전에 그만두셨다고 한다. 그 연세에 기업체 일을 봐주셨다는 걸 보니 꼭 필요한 분이셨나 보다고 하니 그냥 미소만 지으셨다. 나도 내년 말이면 은퇴라고 하니 너무 젊다며 당신의 은퇴 후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신다. 한 평생 보낸 직장이지만 은퇴라는 시점으로 직장의 인간관계는 다 정리되고 만다며 때로는 그게 참 허탈하다고 하셨다. 정기적인 모임도 있지만 2년째 코로나로 여의치 않으니 연락도 끊어지는 것 같단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누굴 만나시냐는 물음에 교회나 취미 동호회에서 만난 인연들 서너 명이 주로 모이는데 그것도 서로 부담 없이 비용은 n분의 1로 낸다고 했다. 그러리라 여겨진다. 직장의 인연들은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엮어진 인연들이다. 개인적인 각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은퇴 후에도 이어지리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나 역시 연락을 드리는 분들은 몇 분이 안 된다. 그분들과는 어떻게 오랫동안 이어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공석과 사석에서 직원인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분들이셨다. 일을 할 때는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술자리라도 가게 되면 친형 같이 나를 챙겨주고 장난받아주던 분들이셨다. 직장 내 인연도 그런 관계가 오래가는 것 같다. 요즘은 직장을 벗어난 인간관계가 끌린다.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어떤 관심거리로 모인 사람들은 일단 서로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스님이 먼저 일어서셨다. 단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에서 올라오신 분이시다. 고속터미널까지 내가 배웅하기로 했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빠르신지 따라가는 내가 버거울 정도다. 요즘은 코로나로 행사나 강의도 드물어 시간이 많다며 경주에 또 놀러 오라신다. 직장 다니는 동안에야 자주 갈 수 있겠냐며 내년 은퇴 후에는 지겨울 정도로 보게 될 테니 각오하시라고 말씀드리니 웃으신다. 그렇게 주말의 만남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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