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요즘 무슨 재미로 사세요?

by 장용범

요즘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으면 보통 돌아오는 답이 ‘재미로 사냐 그냥 사는 거지’이다. 그런데 이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게 사라지고 하고 싶은 게 없어질 때 사람이 늙는다고 하지만 이게 선후관계가 애매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동안 꽤 많은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체적인 그림도 가지게 된다. 마치 시작과 끝을 다 아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무료함과 권태는 왜 그리 견디기 힘든 것일까? 이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의미를 추구하기 때문일 거다. 실제로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게 하고 보상은 넉넉하게 주는 심리 실험을 했다 한다. 실험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했다는데 보상은 일정 부분 행동을 하게 하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할 수 있는 동기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월요일 출근을 하며 요즘 일하는 게 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일이 현상 유지를 위한 관리 업무다 보니 일의 성격상 변화보다는 안정이 우선이다. 오히려 변화가 많으면 안 되는 일이다. 나라에서 정한 법의 테두리에서 회사 내부 규정을 만들고 그것을 잘 지켜내는지 감시하는 업무는 변화나 변칙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달리 보면 참 편한 업무이기도 하다. 각 부서에서 일을 한 결과를 시행 전에 합의라는 명목으로 들고 와 법이나 규정 위반 여부를 심사받는 곳이니 그냥 도장을 가진 부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남들 보기엔 부러운 업무일지 모르겠으나 지금껏 내가 해왔던 무언가를 만들어 냈던 것과는 차이가 많은 일이다. 부서를 처음 맡고 나서 처음 몇 달간은 재미가 있었다. 업무 프레임을 만들고 직원들의 적절한 분장을 통해 부서가 돌아가게끔 시스템을 구축할 즈음이다. 이제 6개월 정도 지나니 처음 구축했던 업무체계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어 내가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직원들은 알아서 일을 잘 해낸다. 언젠가 친한 직원이 나는 창업형이지 수성형은 아니라고 했는데 나에겐 그런 면이 있나 보다. 그렇다고 현재의 일을 현장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금융회사가 영업을 해야 먹고사는데 영업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대상으로 삼아 철저히 살핀다면 현장에서는 차라리 영업 안 하고 만다는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도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 일인 셈이다.


요즘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본업은 큰 재미가 없고 대신 글쓰기나 읽기, 만나기 등의 부수적인 것에 재미를 둔다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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