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실재를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by 장용범

부서 내 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한 공간에서 운영하던 센터였으나 집단 감염을 우려해 현재는 두 곳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중이다. 주말에 전체적인 PC 교체 작업을 진행할 일정이라 지난주 준비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기사들이 알아서 설치해 준다는 직원의 말에 몇 가지 질문을 하니 대답을 못한다. PC 본체가 온다면 업무용 소프트웨어는 누가 설치하는가. 설치 후에 통신 연결을 확인해야 하는데 상담사 개별 PC마다 IP주소가 다르고 비밀번호가 다 틀린데 어떻게 할 건가. PC 설치 후 연결상의 문제가 생긴다면 월요일 업무 마비가 예상되는데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등등. 그제야 이 일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부랴부랴 관련부서 대책회의와 콜센터 직원을 줌으로 연결해 그곳 준비상황을 지시한 후 주말을 맞았다. 오전 9시부터 작업을 한다기에 점심이나 함께 하려고 좀 늦게 나갔더니 오전 작업이 벌써 끝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오후 작업까지는 시간이 남아 출근한 센터 직원들과 짜장면을 먹고는 나머지 일은 맡기고 왔다. 일을 하다 보면 너무도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한 일이 아닌 것들이 있다. 특히 익숙한 것들은 더 간단해 보인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늘 몰고 다니지만 정작 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것처럼 자주 접하는 것일수록 그것을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번 콜센터 PC 교체가 경험이 부족한 그 직원에게 좋은 사례가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생각과 실재가 다른 경우가 있다. 금번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을 보더라도 미국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 철수 시작 일주일 만에 수도가 함락되고 자국민 철수도 어려울 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 걸 보면 실재 파악을 제대로 못한 미국의 책임도 크다. 한국과 일본의 자국민과 협력자들 철수 작전도 그렇다. 공항에 비행기를 보내고 공관원과 협력자를 태우고 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현지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한일 간 디테일의 차이가 아프간 철수에 대한 극명한 결과 차이로 드러났다. 앞으로 일본은 탈레반에 자국민들이 인질로 잡힌 셈이니 외교적 해결로 골머리를 썩힐 전망이다. 이 점은 우리 정부가 참 잘한 일로 평가받을만하다.


생각을 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재를 보려면 번거로운 일들이 많다. 때로는 직접 확인을 해야 하고 과거의 자료도 찾아야 한다. 또한 팩트가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생각으로만 처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닌 주변의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일이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실재를 보고 대책을 마련하면 손해 볼 일이 적다. 앉아서 천리를 간다는 말처럼 생각은 하루에도 지구를 열두 바퀴 돌기도 하지만 실재는 집 밖에 나가기도 귀찮아한다. 요즘은 가상세계, 스마트 폰, 인공지능 등 부각되는 이슈 대부분이 생각과 논리 안에서 구현되는 일들이 많아 실재와 멀어지기 쉬운 환경이다. 이럴수록 생각을 멈추고 실재를 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