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내가 정한 틀에 내가 갇힌다

by 장용범

새로운 대학원의 학기가 시작되었다. 네 번째 학기이니 이제 반환점은 돈 셈이다. 문예창작이라는 정말 뜬금없는 전공을 택해 지금까지의 내 삶의 궤적과는 정말 다른 영역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번 학기는 좀 목표를 지닌 수강신청을 했는데 ‘소설 창작’과 ‘에듀테크 콘텐츠 크리에이팅’을 신청했다. 소설을 한 편 쓰고 싶다는 것과 교육 콘텐츠를 제작해 보려는 목표가 생긴 때문이다. “소설 창작” 첫 수업에 교수의 말씀이 인상 깊다. ‘소설 창작은 열정으로 초고 하고, 이성으로 퇴고하며, 반복해서 투고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한 마디로 쫙 빨려 드는 듯한 인상적인 언급이다. 무언가를 한 마디로 규정짓는 것은 강한 힘을 지닌다. “~은 ~이다”는 사전적 정의의 전형적인 형식이지만 개인의 경험과 지식이 함축된 조작적 정의를 많이 가진 사람이 실행력은 탁월한 것 같다.


영화 <치킨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평생을 알만 낳다가 나중에 털 뽑혀서 먹히고..., 그렇게 살다 죽고 싶어요? “

“어떻게 해요. 그게 우리의 팔자인데....”

“그게 문제예요. 양계장 울타리가 여러분 머릿속에 있다는 것.”


이슬람의 여성들을 보면 ‘히잡’을 쓰고 있다. 그런데 아프간 사태를 보며 탈레반 치하에서는 ‘부르카’를 써야 한다기에 히잡과 부르카를 구분하는 기준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히잡’ 종류가 형태에 따라 자그마치 여덟 가지나 되었다. 히잡의 개방성에 비해 부르카는 가장 폐쇄적인 복장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차도르, 니캅, 샤일라 등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2년째 쓰고 있어도 이리 답답한데 저들은 평생을 저러고 살아야 하니 더욱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사람이 관념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면 스스로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자신을 이리저리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특이한데 자신을 정의 내리고 나면 향후의 행동을 그에 맞게 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내성적이다’고 자기 규정화시키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말을 한 번 건네 볼까는 생각을 하더라도 ‘안돼, 나는 내성적이야’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행동이 안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를 규정 내리는 일은 중요하다. 스스로의 프레임을 만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게 억지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는 것인데 아무리 입으로 ‘나는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되뇌어도 속으로 ‘글쎄?’라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럴 땐 실행력을 입증하는 작은 성취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거창한 게 아니라 현관의 신발정리를 일주일간 한다고 정했으면 그것부터 달성해 보는 게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자문해 볼 때 나는...

-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

- 원하는 것을 90% 이상 해내는 사람

- 삶의 균형이 잡힌 사람

- 행복한 사람

...이라고 큰 망설임 없이 정의할 수 있다면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리 살게 될 것이다. 그게 자신의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력이 쌓여 스스로가 그렇게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 다 속여도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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