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께 근황을 여쭈니 “원하는 것도 없고, 욕심도 없고, 심심하면 TV 보다가 졸리면 자고, 지금 죽는다 해도 크게 아쉬움도 없다”라고 하시기에 “어, 우리 아버지, 도인이 되셨네”라고 하니 웃으신다. 편안하게 잘 지낸다는 말씀이지만 정말 가감 없이 당신의 상태를 표현하신 것 같다. 한편으로는 팔십 대 중반의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도 싶지만 몸과 정신이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자식 된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농담 삼아 하긴 했지만 도를 통하고 깨달음을 얻은 이의 모습이 정말 아버님의 말씀처럼 저런 모습일까라는 의문이 좀 든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수행하는 자가 추구하는 바이니 어떤 면에서는 맞긴 하는데 내 아버님을 뵈면 그냥 팔십 노인의 일상에 대한 무료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에 이른 자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해탈과 열반에 이른 자인데 달리 표현하자면 자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도를 쫓는 자는 도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깨달음은 그냥 존재 자체에 대한 지고지순의 충만감이라는 등 여러 말들이 있지만 도인이나 부처의 모습이 정작 어떤지는 짐작이 안 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가르침을 주신 성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앙하는 종교인들의 삶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성인들의 모습을 엿보고자 하는데 그것도 너무 철저한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리 재미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법륜 스님의 일상을 보면 매일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마치시고 틈만 나면 농사짓는 울력을 하고는 빡빡한 스케줄에 맞춰 온라인 즉문즉설이나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을 뵙는데 정말 대단하시다는 마음은 있지만 나도 저리 살고 싶다는 마음은 안 일어난다. 오히려 삶은 내가 더 재미있고 즐겁다는 느낌도 드는데 가족들이 있고 마음 맞는 이들과 가끔 술 한 잔 걸치거나 책 한 권 들고 카페에 앉아 여유를 누리니 말이다. 빈틈없는 일상을 놀이라고 생각하실지 스님의 마음을 알 길은 없지만 내가 저리 살기는 어렵겠다는 주제 파악 정도는 하는 편이다.
그러니 깨달음이 어떻고 도를 통한 모습이 어떻고는 잠시 제쳐두고 그냥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되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은 삶을 살자는 단순한 목표를 잡아 본다. 이것도 스님의 가르침이긴 하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한다면 나로서는 지금 이 상태로도 좋지만 세상의 부조리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뭐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아닐까 한다.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