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데 예전 교과서에서 본 듯한 ‘꽃씨’라는 시비가 있어 발길을 멈추었다.
꽃씨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 있다.
아주 작은 하나의 꽃씨에서 파란 잎과 빨간 꽃, 그 꽃을 찾아오는 노란 나비를 볼 수 있었던 시인의 눈이 놀랍다. 너무도 간단한 시라서 쉬운 시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세상 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처럼 명료하게 언급한 시도 없을 것 같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고, 간밤에는 무서리가 저리 내렸다고 했다. 다만 한 시인이 꽃씨에서 미래를 보았다면 다른 시인은 국화꽃에서 과거를 본 것이 다를 뿐이다. 현재 내 눈앞에 있는 것이 꽃씨든 국화꽃이든 그 안에는 사건과 시간이라는 변수가 놓여 있다.
30년 지기 친구를 만났다. 그와 나는 직장에서 만나 절친이 되었지만 내가 서울로 옮긴 후에는 명절에 가끔 보는 사이가 되었다. 이번에는 거의 4년 만에 보게 되었는데 친구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이 계기였다. 30대의 어느 날 둘이서 어깨동무하며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다. 4년 정도 흘렀는데 친구는 나이가 훨씬 들어 보였다. 그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겠지만. 농촌이 고향인 그는 1년 먼저 은퇴할 거라고 했다.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에다 농지를 구입하고 작은 농기계도 마련했나 보다. 지금도 틈만 나면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며 이번에 고구마 수확하면 보내주겠다고 한다. 대출 한 건에 수 백억을 취급하는 기업금융 지점장이 고향에 내려가 농사짓는다는 게 안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는 흙을 만지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농촌이 고향인 사람은 농촌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이 있나 보다. 내가 만난 농촌 출신들은 대부분 고향의 흙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고 헤어질 시간을 서로 아쉬워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그간 얼마나 많은 사건과 시간들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게 중년 남자 둘 사이에 대추 한 알로 영글었던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