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인간은 동물일까?

by 장용범

고미숙의 ‘인생과 욕망의 연결고리’라는 강의를 듣다 보니 예전에 읽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과 묘하게 연결이 된다. 두 자료를 통해 나름 정리를 해보면..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에게는 두 가지 근본적인 욕망이 있는데 식욕과 성욕이다.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은 이 결국 두 가지를 채우기 위한 부수적인 활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보면 더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하고, 취업을 하고, 더 높은 권력을 추구하는 활동들도 결국은 동물의 기본적인 욕망인 식욕과 성욕을 채우기 위함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문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세련됨을 유지하고자 여러 장치들 이를테면 법과 질서, 문화와 교양 등을 만들다 보니 동물로서의 기본적인 욕망들을 억제함에 있다. 그나마 식욕은 어느 정도 채울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도 좀 이상하게 변질되는데 개인의 식욕은 어느 정도 채우고 나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몸이 받아주지 않는 식욕을 달리 채우는 방법이 남이 먹는 것을 보는 것이다. 정말 채널만 틀면 나오는 게 먹는 방송이다. 유튜브만 해도 왜 그리 먹는 영상이 많은지 이건 아주 독특한 현상 같다. 과거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욕망을 스스럼없이 표출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가 먹방을 또 하나의 포르노그라피라는 말을 했나 보다. 둘 다 인간 욕망을 보는 것으로 충족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성욕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짝짓기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일부일처라는 제도적 개념이 없다. 그리고 수컷들의 속성은 참으로 무책임한 편인데 씨만 퍼뜨리고 나면 나머지는 암컷이 짊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성결정권은 암컷에게 있다고 알려져 있다.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온갖 부수적인 것들을 추구하는데 심지어는 자신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되기도 한다. 다윈은 자신의 친구에게 공작새의 꼬리만 보면 어지럽고 토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찰스 다윈은 ‘진화론’으로 유명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그의 이론은 ‘자연선택설’이다. 그의 자연선택설은 생물이 진화하는 방향은 생존에 유리하게끔 진화한다는 것인데 공작새의 꼬리는 그의 이론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증거였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도 이것은 적용된다. 오늘날 한국의 남성들은 왜 이리도 결혼이 어려울까. 여성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가 날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성은 왜 또 결혼이 어려운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늘면서 식욕을 채우는 경제적 능력을 굳이 남성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고 지금의 조건보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 결혼을 하는 건데 아무리 봐도 결혼으로 좋아질 것 같지 않아서다. 사정이 이러하니 혼자 사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 성공을 이룬 남성의 경우는 그 자리에 오기까지 성욕에 대해 참으로 많은 억압을 했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문명화된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가 제도적으로 정립되어 있으니 자신의 성욕이 변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 안 될 고위층의 성범죄가 수시로 표출되는가 보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거다. 환경은 바뀌었는데 남성의 유전자에는 원시인의 본능이 남아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아스팔트 위의 원시인이라고 했다.


철저하게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전제로 지금의 사회현상을 풀어보면 꽤 많은 해석이 정의된다. 인종차별은 어떻게 풀어낼까. 유유상종이다. 생김새가 다르면 동물세계에서도 배척의 대상이다. 같은 원숭이라도 일본원숭이가 비슷한 침팬지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인간의 인종차별도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인간에게 너무 많은 이성적, 도덕적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런 짓을 저지르지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인간이 저토록 훌륭한 짓을 할 수 있지라는 게 좀 더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연구하면 할수록 동물이라는 게 진화생물학의 결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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