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일상과 닮은 양자역학

by 장용범

물리학의 미시세계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양자역학에서는 우리가 전자를 관측하기 전까지는 명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닐스 보어의 주장이었고,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달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달이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가라며 응수했다. 두 거장의 주장이 달랐지만 현대 물리학에서는 보어의 입장을 지지하는데 아무도 달을 보지 않는다면 그곳에 달이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달의 위치를 확인할 방법은 누군가 달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일기예보의 ‘인형의 꿈’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댄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내가 고개를 돌려야만 그곳에 인형이 있는 것이지 고개를 돌리기 전에는 인형은 거기에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추석 연휴는 이번 주 부 터지만 지난 주말을 기해 미리 다녀왔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부산에는 아들을 보낸 후 두 분의 일상이 계속 이어질 터인데 양자역학의 관점에서는 두 분은 그곳에 안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그 중간의 하늘에 떠 있는 나를 떠올리니 갑자기 그 모든 상황이 낯설게 다가왔다. 보지 않으면 그곳에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원자의 세계를 비유할 때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를 예로 든다. 원자핵이 서울시청 광장의 축구공 크기라면 전자는 수원쯤에서 그 축구공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는 먼지 하나라는 말을 한다. 즉, 서울시청에서 수원까지가 원자의 세계인데 축구공과 먼지 하나 사이는 비어있는 공간이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도 결국 원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떠올린다면 눈에 보이는 사람의 형상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대체 내 눈앞에 있는 저 형상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제 하루만 해도 한국에서는 대선 경쟁자들의 소식이 이슈였지만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이 판지시르에서 민간인을 처형한 일이 일어났고, 내가 자주 보는 한 여행 유튜버는 지금 카자흐스탄 동쪽에 있는 외스케맨이라는 도시를 거닐며 그의 영상을 찍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내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나는 그 사건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이게 마치 양자역학의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관측되기 전까지는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나 관심을 두기 전까지는 그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세상의 일이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아서다.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다.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었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 자신에만 관심을 둔 사람이라고 한다. 그 모습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히키코모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보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밝히는 중요한 활동이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듯 내가 애써 보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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