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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시간은 착각일까?

by 장용범

아침 산행을 나서다가 아래층 어르신을 만났다. 당신께서도 산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걷자고 하신다. 70대 중반의 어르신인데 걸음이 참 빠르셨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앞으로 살 날이 10년 정도라며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지난다고 하니 그 어른의 10년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짧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시간을 애써 보내지 않더라도 시간은 흘러간다. 내가 70대나 80대 노인이 된 적이 없어 그분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는 없겠으나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 참 무료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늙어서는 시간이 남아도니 이것을 좀 적절히 섞어두면 좋을 텐데 시간은 언제나 같은 양이 주어지고 똑같이 흐르고 만다.


물리학에서는 시간을 t로 표시한다. 우리는 시간에 대해 거스를 수 없는 절대성을 부여하지만 이것도 상대성 이론에서는 속도가 빠르면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란 사람들이 느끼는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늙어가고 꽃이 피고 지고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마저 기억이라는 뇌의 작용에 불과하고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고 보자. 사실 우리의 기억이란 그리 믿을 만한 게 못된다. 10년 전의 이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의 삶을 영화 필름에 비유해 본다. 낱개의 사진들을 연속으로 붙여 빠르게 돌리면 화면상에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듯이 우리의 삶도 그 사진 한 장 한 장이 이어진 것이라 보자. 그러면 그 사진 한 장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이 우주 어딘가에 남아있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 나의 삶이라는 영화 필름을 영사기에서 꺼내어 바닥에 쫙 펼쳐보면 어떤 사진에는 태어날 때 모습이 있고 어떤 사진에는 첫 외국 여행한 사진도 있으며 어떤 사진에는 죽는 순간의 사진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시간은 없고 각 장면들이 담긴 낱개의 사진들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여기지만 시간은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들 뿐이고, 있는 것이라곤 현재의 모습이 담긴 여러 사진들만 남아 있는 것이 실제의 모습이다. 살 날이 10년이라는 그 어른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운명은 어쩌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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