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고파 병’이라고 있다. 늘 남의 사랑을 갈구하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병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 중 4단계에 속하니 상당히 고차원의 욕구이긴 한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늘 남의 기준에 맞추며 살아야 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의사결정의 중심에 두고 내 행동을 결정하다 보니 정작 본인은 심리적 노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은 사람들이 가진 기본 욕구이니 직장 내 상사가 직원을 대할 때 활용하는 유용한 도구기도 하다.
처음 여기 부서장으로 발령 났을 때 아주 특이한 직원이 있었다. 객관적인 스펙을 보면 꽤나 괜찮은 직원인데 입사가 늦었고 승진에서 몇 차례 누락되다 보니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하루는 면담을 요청하기에 들어보니 자신은 이 직장에서 승진할 생각도 없고, 윗사람의 인정도 필요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식이었다. 다만, 업무는 펑크 내지 않겠지만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말라고도 했다. 입사 연도로 치면 부서 내 선임의 위치인데도 그 역할을 맡지 않으려 하고 하루 종일 고슴도치처럼 털을 세우고 있으니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첫 대면의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래 직원이 승진에도 관심 없고, 고과 성적이나 상사의 인정도 필요 없다고 공식 선언했으니 회사라는 틀에서 내가 그를 관리할 수단이 사라진 셈이다.
예전 같으면 직원의 그런 태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지금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편이다. 사람을 내 맘대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직원들의 자질을 두고 불평해 본들 달라질 게 없다면 이들을 존중하며 주어진 기간 동안 함께 일할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바꿀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하는데 이들도 나의 귀한 인연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 후 그 직원의 장점을 찾아보니 데이터 분석과 리포팅에 상당한 능력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난이도 있는 보고서를 함께 하자고 이끌었고 그의 업무력을 인정하는 가운데 지금은 간간히 웃음도 보이고 주변인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 남을 내 뜻대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헛심만 쓰는 일이니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은 직원에게 책임은 나에게로 하다 보면 조직이 어느새 하나로 뭉쳐지는 것을 느낀다. 사랑 고파 병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는 병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는 사랑도 인정도 필요 없다’는 말을 한다면 그는 지금 사랑과 인정이 가장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