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호기심이 줄고 있다면

by 장용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지적 기능이 하나 있다. 바로 호기심이다. 지식과 경험의 도화지로 치면 여백이 거의 메워져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는 상태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여전히 많은 여백이 남았음에도 다 채웠다고 생각하는 오만일 수도 있다. 젊은 그들에 비해서는 많이 채웠을 테니 상대적이긴 하다. 아직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정말 많이 줄었는데 어느 정도 상식선은 있겠지만 각자의 인생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서다.


최근 딸아이와 ‘베이즈 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은근히 아빠의 지적 허영을 자랑할 수 있었다. 한 10년 전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때 익혔던 내용인데 신기한 건 어제 일도 까먹으면서 어떻게 10년 전 내용이 기억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역시 학습은 호기심이 기반이 되면 오랫동안 남는가 보다.


베이즈 정리가 특이했던 것은 이론 자체는 1740년에 정립되었지만 거의 250년 동안 과학계에서 외면받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그 진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때는 독일군의 암호해독에 쓰였고 지진의 진앙지를 파악하고 잃어버린 수소폭탄을 찾아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이나 빅 데이터에 쓰이는 등 수많은 적용 사례를 남겼지만 정작 과학계에서는 이를 이론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베이즈 정리는 한 마디로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찾아가는 이론’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오늘 내가 구글에서 탈모 샴푸를 하나 검색했다 치자.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구글에 접속하면 내가 보는 화면 구석에는 예전에 보지 못한 광고가 뜬다. 탈모 전문 클리닉, 탈모예방 식품 등 마치 내 마음을 컴퓨터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게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이 구현하는 요지경인데 여기에 베이즈 정리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간단히 보면 한 두 사람이 탈모샴푸를 찾을 때는 모르지만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탈모라는 글자를 입력하면 하나의 패턴이 생겨나고 이들이 찾는 것이 탈모 클리닉, 탈모예방 식품 등으로 연관 검색어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글은 업체로부터 비용을 받고 나에게 타깃 광고를 노출하게 된다. 모든 게 그럴듯한데 과학계는 왜 이것을 과학이 아니라고 했을까? 과학은 객관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뿌리 깊은 믿음이 있는데 베이즈 정리는 주관적 믿음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탈모 샴푸를 검색했다고 해서 내가 탈모라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나는 내 부모님을 위해서 탈모샴푸를 찾았을 수도 있고 그냥 탈모라는 영어단어 hair loss를 검색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호기심은 참 쓸모없는 짓을 하게 한다. 빛으로도 몇 백만 년이나 떨어진 별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보이지도 않는 원자핵의 세계를 탐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당장 쓸모는 없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쓸모 있는 경우도 있다. 중세시대에는 금을 만들겠다고 온갖 금속들을 녹여 실험한 결과 세상의 금속들에 대한 지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비록 금은 못 만들었지만 말이다. 나이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호기심은 줄어들고 ‘다 그런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호기심이 많을수록 인생은 더 재미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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