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로또 1등 당첨이 되더라도

by 장용범

로또 1등 당첨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로또가 당첨되었을 때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로또 당첨자들을 조사해 본 결과 안정적으로 잘 사는 경우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돈벼락으로 불행에 빠진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주변 사람에 대한 불신이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수 십 년 함께 살아온 배우자도 믿지 못해 이혼하는 경우가 있다 하니 로또 당첨이 무조건 긍정적인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로또 1등 당첨은 기분 좋은 일이다. 백일몽은 허황할 수도 있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은 적어도 꿈을 꾸는 시간만큼은 기분이 좋다는 것과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여과 없이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나에게 로또 1등에 당첨된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런데 당첨금액을 얼마로 할까. 국내 로또 최고의 당첨금액은 19회 당첨액인 407억 원이라고 한다. 세금을 제한 실수령 금액만도 273억 원이라고 하는데 이건 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한 100억 원을 당첨금액으로 잡고 이 돈으로 뭘 할 건지 생각해 보자. 지금 통장에 100억 원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벌써 기분부터 좋아진다. 자, 지금부터 뭘 해볼까?


우선 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 지금은 방이 세 개이니 최소 4개 정도의 집으로 이사를 해서 작은 나의 서재를 가져보는 거다. 그렇다고 강남으로 갈 생각은 없다. 여기에 정도 들었고 산세권, 역세권의 주변 환경도 만족하니 이 아파트 단지에서 40평대로 이사를 하는 거다. 얼마나 더 들이면 될까? 시세를 조회해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3억 정도 더 들이면 될 것 같다. 이제 남은 돈은 97억 원이다.


큰돈이 생겼으니 세계일주 여행은 떠나 봐야겠지. 일단 비행기 티켓을 생각해야 한다. 세계일주 비행 티켓은 일반 티켓과는 달리 별도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은 탑승 조건이 정해져 있다. 지구를 한 방향으로만 돌아야 하고 같은 도시는 중복이 불가하다. 그 외 한 대륙당 비행 횟수는 4회 이하, 스톱오버 횟수 제한 등 몇 가지 조건들은 있지만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보통 이용하는 비행 티켓이다. 이왕 좀 편히 가야 하니 비즈니스 클래스로 구입해도 1,450만 원이다. 총 16회 비행에 몇 도시를 더 추가한다 해도 2,000만 원이면 될 것 같다. 나의 여행 취향은 현지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편이니 고급 호텔도 가끔 가겠지만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주로 이용하기로 하자. 이 정도면 먹는 것에는 아끼지 않는다 해도 한 달 생활비로 300만 원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러면 항공권 2,000만 원과 1년 생활비 3,600만 원이면 된다. 아내와 함께 가더라도 1억 원이면 거의 해결될 수준이다. 자, 이제 남은 돈은 96억 원이다.


개인적 성향이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는 안전하게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주의라 굳이 바꿀 생각이 없으니 일단 패스! 값비싼 명품에 대해서도 굳이 지니고 싶다는 생각이 없으니 이것도 패스! 그런데 하나 갖고 싶은 게 있긴 하다. 작은 보트인데 아주 럭셔리한 요트가 아니라 빠른 모터보트 정도이다. 알아보니 가격대는 3,000만 원 정도인데 이것을 1년에 몇 번이나 탈까 생각하니 계류 비용 등 쓸데없는 경비만 잔뜩 들고 구입하면 후회될 것 같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보트는 렌털로 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역시 패스! 별장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몇 번 사용하지도 않고 관리에 골머리만 아플 것 같아 이것도 별로 끌리지가 않는다. 그리고 굳이 별장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싶다. 세상에는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경치 좋은 한 곳에 자리 잡아 계속 같은 경치만 보고 살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다. 그러니 이것도 패스! 그리고 먹는 것도 그렇다. 로또 당첨이 되었다고 하루 세 끼 이상을 먹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 같은 한식에 가끔 좋은 사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정도니 생활비는 현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을 것 같다. 이건 로또 당첨이 안 되더라도 현재 유지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니 정작 당첨금 100억 원이 있다 해도 기껏 4억 정도 쓰고 남은 돈이 96억 원이다.


이렇듯 로또 1등 당첨의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았다. 일단 기부나 증여 없이 오직 나를 위해 쓴다고 상상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쓸 곳이 많지가 없다. 또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굳이 100억 정도의 큰돈이 필요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넓은 집 이사만 아니라면 현 수준에서도 세계일주 여행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은퇴할 때 받을 퇴직금 중 1억 원을 세계일주 여행경비로 쓰면 어떨까. 훗날 내가 죽는 어느 순간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혹시 이런 후회는 하지 않을까? ‘아, 회사를 32년 근무하고 퇴직하던 그때 그 나이에 나는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어야 했는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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