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깐부잖아”
이제 세계적인 한국 드라마가 된 ‘오징어 게임’의 001번 깐부 할아버지가 있다. 올해 78세의 원로배우 오영수 님인데 이 분의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참 멋있게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이 무대라면 우리는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말년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오영수 배우는 ‘자제’를 이야기했다. ‘자제’는 스스로 절제한다는 뜻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후 바로 광고 섭외가 들어왔다는데 ‘깐부치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마다했는데 그냥 배우로 남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보통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한다. 상황은 수시로 바뀌고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지만 그럼에도 확고한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가는 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에 드물지만 그런 인간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다.
오영수 배우는 ‘나이가 드니 있는 그대로가 예뻐 보인다’ 고도했다. 산길을 가다 예쁜 꽃을 보면 젊었을 때는 꽃을 꺾어 가지만 나이가 들면 제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가 보고 싶으면 다시 와서 보게 되는 것이라는 비유를 든다. ‘있는 그대로가 예쁘다’는 말에 여운이 남는다. 직장생활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부쩍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동소이라는 말을 떠 올린 게 된다. 가져 봤자 얼마나 더 가질 것이며 올라가 봤자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 싶어서다. 살면서 더 많이 더 높이를 추구하는 것도 한 때인 것 같다. 가지지 못하고 오르지 못한 자가 흔히 하는 정신승리라 할 테지만 세상에는 오영수 배우처럼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인생의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주말 동안 지방에 내려가는 아내를 배웅하고 후배가 운영하는 중국 찻집에나 갈까 싶어 전화를 했다. 신촌과 논현동 두 곳이기에 어디로 갈까 물으니 그러지 말고 함께 아차산이나 오르자고 한다. 토요일 오후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후배와 함께 산을 오르며 땀을 흘렸다. 아차산은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 보기만 했지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구리와 서울의 경계에서 한강 조망이 탁월했고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을 내려와 맥주 한 잔 하는 중에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직장인이 직장을 벗어난 인연 맺기란 쉽지 않은데 후배 덕분에 찻집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경험의 폭을 넓혀감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출근을 하면 직장이 사회의 전부인양 살고들 있다.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 외부인의 시선에서 직장을 보면 어쩐지 작고 낯설어 보이기까지 하는데 작은 그 안에서 경쟁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오히려 이상하기까지 하다. 가끔은 비행기를 타거나 산에 올라 도시 전체를 보게 된다. 위에서 보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내가 차지하는 역할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과 그 마저도 등장 시간이 정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길가의 꽃을 있는 그대로 두려면 꺽지 않는 절제심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나를 둘러싼 다양한 일들과 사람들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둘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