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김수영 문학관 탐방기

by 장용범

시인 김수영 문학관을 다녀왔다. 대학원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하는 오랜만의 문학관 탐방이다. 문창과를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문학관을 일부러 찾아다니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는데 사람의 일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김수영 시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풀’이란 시를 대하고서야 ‘아, 저 시였구나’ 싶었다. 80년대 민주화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시절 ‘풀이 눕는다’로 시작하던 대표적인 저항시가 바로 그의 시였다. 김수영 문학관을 가기 위해 도봉산 인근의 쌍문동까지 가야 했다. 가는 길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떨구고 있었고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낙엽을 밟으며 가는 운치 있는 길이었다. 가을, 낙엽, 시인과 그의 문학관 이 모든 것들이 그냥 한 폭의 그림같이 좋았다. 문학관은 아파트 단지 한 복판에 있었다. 아마 문학관이 먼저 생기고 나중에 아파트가 들어섰을 것이다. 그의 생애와 육필 원고 등 전시 자료를 보며 지나 가는데 모퉁이에 조그만 방이 하나 보인다. 김수영의 시를 연구했던 연구 논문집을 한 곳에 모아 둔 곳인데 그 방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인은 48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짧은 그의 생애에 비해 한국 문학계에 남긴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 것 같았다. 그의 문학적 화두는 단연 ‘자유’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을 갈 정도였으니 당시 좀 사는 집안의 자식이었나 보다. 영어를 잘했는지 “Encounter”와 “Partisan Review”라는 잡지를 정기 구독하며 원서로 보았던 것 같다. 서구의 좌파와 자유주의 사상이 담긴 책이었는데 그의 시에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다. 시인의 정신은 자유를 갈구하는데 그가 몸 담은 시대는 3.15 부정 선거와 4.19 혁명,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변기였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의 시 ‘풀’이 그 마음을 대변한다. 민중을 억압하는 폭압적인 권력을 바람에 비유하며 그 바람이 세게 불어올 때 풀은 비록 납작하게 엎드리지만 그 뿌리는 땅에 박혀 있다가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 지역에 사시는 원우의 안내로 근처 이름난 카페로 갔다. 승마학교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넓은 풀밭과 가을의 정취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주말인 만큼 사람들은 좀 붐볐다. 때로는 좀 알려지지 않은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고 싶지만 인스타 같은 SNS의 발달로 그런 장소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한 원우께서 이번에 도서관 백일장에 금상을 받게 되었다며 커피를 사시겠다고 했다. 내가 동아리를 만들어 450일 넘게 글쓰기를 이어 온 덕분이라는데 좀 쑥스러웠다. 그 동아리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데서 출발했다. 이미 블로그에 글쓰기를 이어오던 터라 이왕이면 다른 분들과 함께 써보자는 취지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괜찮은 시도였다.


이 모임을 450일 넘게 꾸준히 이어 온 힘은 무엇일까? 아마도 작게 시작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라도 모이면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었고 회원들이 글을 쓰고 안 쓰고는 본인들의 사정이니 그에 대해선 너무 집착 말고 그냥 카페 플랫폼을 만들어 진척도만 알려드리자는 생각이었다. 여기에 한 원우께서 독서모임과 문학관 탐방이라는 오프라인 모임을 이끌어 주시니 활력이 더 생겼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완벽한 준비보다는 시작하면서 갖추어 가는 내 성향과 잘 맞았다고 여겨진다. 아무튼 모처럼의 문학관 탐방으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좋은 분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