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같다는 착각만 있을 뿐.” 어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모르겠으나 사실인 것 같다. 불교에서 진리라 하는 ‘무상(無常)’의 뜻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이다.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변한 것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니 세상에는 같은 것이 없다는 뜻도 된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어제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밤 사이 내 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고 내 마음은 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변화냐고 묻는 게 이상하다. 조 단위로 이루어진 세포들의 변화를 때로는 눈치챌 수도 있고 그냥 덤덤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 마음은 또 어떠한가. 상쾌하게 시작할 수도 있고 다소 침울하게 시작할 수도 있다. 느끼지 못한다고 변화가 없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다는 전제로 하루를 시작한다. 명백한 착각이다.
나에겐 꼬마 이모라 부르는 막내 이모가 한 분 계시다. 어릴 적 네 살 많은 꼬마 이모와 잘 지낸 기억이 많은데 성인이 되면서 각자의 길을 가다 보니 연락이 뜸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 어머님 생신 때 그 이모님을 다시 만났는데 얼굴도 많이 달라졌지만 내년 환갑이란 말에 더 놀랐다. 이처럼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경우는 대상과 나 사이에 만남 없이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이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이쯤 되면 변화는 일상이고 진리임을 수용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달리 가져 볼 필요가 있다. 내게 익숙한 저 사람을 어제와 같다고 여기는 건 착각임을 알아야 한다. 분명 다른 사람이다. 신체 조건도 달라졌고 마음도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리고 더 한 것도 수용해야 하는데 나도 어제와 다른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 하나 같을 게 없다. 나 역시 몸도 마음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리 보면 가장 큰 거짓말이 변치 않겠다는 말인 것 같다. 우리가 ‘모든 것은 변한다. 변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주변을 볼 수만 있다면 관계로 인한 기대나 실망은 좀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그저 같다는 착각 또는 같아야 한다는 헛된 믿음을 지니고 있기에 삶이 좀 피곤한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십 수년 만에 만난 꼬마 이모의 변한 모습은 한눈에 알아채지만 매일 보는 익숙한 사람의 변화는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내 주변은 이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어느 날 익숙한 사람과 갈등이 생겨났다면 이것을 체크해 보자. ‘내가 저 사람을 이전과 같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분명 다른 사람일 것이다. 좋은 점도 있다. 같다는 착각을 내려두면 나 역시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변치 않음을 믿는 마음 그것이 어리석음이다. 세상이나 사람이나 변하는 게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