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시작은 정말 사소하다

by 장용범

줌에서만 보던 인물들을 비대면에서 만나게 되면 마치 연예인을 만난 느낌이 든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모임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된 가운데 위드 코로나 분위기 속에 대면 모임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일요일 ‘북씨네’ 독서 모임도 그랬다. 돌아보면 이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도 대단한 우연이었다. 그 인연이 이어지는 과정이 참 신기한데 2015년 블라디보스톡 여행 이후 대륙에 대한 관심을 두던 차에 우연히 교보 문고에서 발견한 ‘유라시아 견문록’에 감명을 받게 되었고 출판사를 통해 저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저자에게 강의가 있다면 듣고 싶다고 했더니 ‘대륙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곳에서 내 사고의 지평을 확 넓혀주는 강의와 강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 한 분이 성공회대 김창진 교수였다. 그분의 러시아와 대륙에 대한 열정에 끌리던 차에 교수님이 추진하는 ‘크라스키노 포럼’의 창립멤버로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크라스키노는 러시아의 지명으로 그 위치가 북한의 나진-선봉,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의 삼각지역을 연결하는 곳이다. 교수님은 이곳의 이름을 딴 포럼을 만들어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처럼 동북아의 문화와 교류 등에 대한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비전을 이야기하셨다. 그 후 나의 활동은 이 모임에서 주관하는 ‘러시아 인문강좌’와 ‘북씨네’ 독서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인터넷 신문 ‘유라시아 평론 협동조합’ 창립총회까지 참석했으니 이 모든 것이 ‘블라디보스톡 여행’과 ‘유라시아 견문록’이라는 한 권의 책에서 출발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미 상당 부분 개입하고 있어 은퇴를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을 할 것 같다.


또 하나의 작은 시작은 글쓰기이다. 이 역시 시작은 사소했다. 김민식 PD의 “영어책 한 권 읽어 봤니”라는 책이 재미있어 그분의 강연을 찾아갔고 거기서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그거 말 되네’하던 차에 내 글을 보고 싶다던 한 직원의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래서 오래전에 개설했지만 묵혀 두었던 블로그에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당시엔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았고 어디 한 군데 몰입의 대상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작업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 나도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 몰랐다. 매일 한 편의 글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이제는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몇 군데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답이 없어 책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닌가 보다 하던 중에 ‘전미애의 POD 출판’이라는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별다른 비용 없이 출간한 책이 ‘좀 가볍고 재밌게 살아보기’라는 책이었다. 지금도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내 이름을 치면 나오는 책의 표지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 후 글쟁이 수업을 듣자는 마음으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니 이제는 등단이 하고 싶어졌다. 이미 등단한 선배에게 등단 방법을 묻게 되고 그분의 말씀대로 지역의 문인 협회 회장님께 연락을 취했다. 매일의 블로그 글을 회장님께 보내면서 문학지 등단도 하게 되고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지만 이 모든 시작이 너무도 사소한 곳에서 출발했다. 사람의 운명이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이 쪽 분야에서도 활동영역을 넓히다 보니 다른 문인들과의 교류도 늘어나 어느새 내 주변에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어제도 한 소설가가 자신이 속한 협동조합을 소개하며 내가 향후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소개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활동 영역을 집과 직장에 머무는 것 같다. 나 역시 오랜 기간 그런 생활을 이어 왔다. 하지만 남들처럼 그 길도 가지만 전혀 다른 나만의 세계를 따로 구축할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이것은 새로운 가능성이다. 직장은 은퇴란 게 있지만 내가 구축한 이 세계는 은퇴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게 참 재미나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기본 생활이 해결되어 부릴 수 있는 여유라 생각하니 이 직장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은 진리다. 별로 탁월할 게 없는 개인이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방법은 축적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고 그 방법으로 블로그나 유튜브와 같은 개인 미디어 활용이 유용함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아직은 내세울 게 없지만 계속 쌓아가다 보면 뭔가는 되어 있을 것이다. 하다 못해 내가 세상을 떠날지라도 나의 글은 남을 것이다. 이건 상당히 매력적인 작업이다. 짧은 생물학적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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