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의 ‘나는 별 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는 들을수록 참 재미나다. 장기하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니가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마’라고 주의를 끌고는 기껏 한다는 말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별 다른 고민도 걱정도 없다. 나는 하루하루 사는 게 재밌고 신난다’고 하니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는 거다. 마치 상대를 약 올리는 것 같은 노래이다. 나는 사는 게 괴롭고 힘이 든데 저 사람은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배알이 꼴리는 것이 인간 심리다. 그래서 이별한 연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내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노래 가사처럼 요즘의 내 상태가 정말 별일 없이 살고 있고 별다른 고민이나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재밌게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성격 테스트를 했었는데 어느 한 가지 일만 해서는 만족을 못하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려 저글링을 하듯 돌리는 가운데 재미와 성취를 느끼는 유형이라던데 어느 정도 맞는 것도 같다. 감당할 범위 내에서 이것저것 벌려 놓고 그에 맞춰 분주히 활동하는 것이 체질인가 보다.
지난주 ‘1인 창직’ 과정을 함께 수료했던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800회 넘도록 이어가는 걸 보고는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으셨나 보다. 전화나 줌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주말을 기해 만나기로 했는데 과정을 수료했던 다른 분과 함께 나오겠다고 하셨다. 그냥 카페에서 만나 가볍게 말씀 나눌 생각이었는데 스터디 룸까지 대여하셨다기에 부담이 급상승했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는데 수능을 치른 지 얼마 안 되어 강남 사거리는 그야말로 인파로 붐볐고 카페마다 사람이 넘쳐나 조용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스터디 룸만 한 곳도 없었던 것 같다. 하필 지하철 출구를 잘못 나와 약속시간을 한참 지나 도착했기에 두 분께 많이 미안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남의 자랑질이다. 그래서 자랑하려거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두 분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나의 사례를 들으러 오셨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란 사람에 대한 소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동기, 글을 쓰며 달라진 일상의 변화, 장차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한참을 털어놓으니 어느덧 정해진 룸 대여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중년의 성장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만남이 그냥 일방적인 나의 이야기만 듣고 지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학동역 근처 후배의 중국 찻집으로 함께 이동했다.
조금 색다른 분위기에서 차를 따르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우리가 고민만 하지 말고 그냥 셋이서 프로젝트를 하나 해보면 어떠냐고 했다. 그게 가능한 게 한 분은 인물화 그리는 실력이 탁월하고 작품도 100여 장 있는데 수줍음이 많으셨다. 그리고 다른 분은 전시, 박물관 교육을 공부하신 전문성을 가진 분인데 본인의 콘텐츠는 부족하지만 적극성과 기획의 장점이 있으니 이 조합을 살려 메타버스 상에 인물화 전시회를 열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책이나 강의로 공부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직접 추진하며 배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메타버스를 익히고 한 분이 지금껏 작업했던 100여 장의 인물화에다 NFT를 부여하는 작업을 함께 하며 메타버스와 NFT의 세계를 경험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을 매뉴얼로 만들어 향후 제2, 제3의 작가들을 발굴하여 메타버스 상의 작가 전시회를 개최하는 작업을 진행한다면 그게 전시 기획이지 별거냐고 했더니 갑자기 대화에 활력이 넘친다. 그간 영업기획과 조직을 매니징 한 경험을 돌아보면 이 정도의 프로젝트는 그리 어려운 작업도 아니기에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단 프로젝트 명을 무얼로 할까 하는데 작가님이 한 번 해보자는 차원에서 ‘해봄 프로젝트’가 어떠냐고 해서 모두가 수용했다. 전시회는 2022년 1월 2일에 개최하기로 하고 진행 간의 소통은 줌을 이용한 회의와 카톡방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별 기대 없이 왔다가 재미난 프로젝트를 하나 런칭하니 모두의 눈이 반짝인다. 2차 모임은 1주일 후에 갖기로 하고 다음 모임까지 NFT에 적용에 대한 공부와 100여 장의 그림들의 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각자 구상을 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이런 게 재미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각자의 재능과 열정을 엮어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생겨난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적 과업에 치여 직장생활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은퇴시점이 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면도 있다. 창직의 시작은 ‘돈보다 가치를 추구하라는 ‘1인 창직’ 과정의 가르침이 이 같은 일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끌리면 시작하라. 재미있으면 계속하라’는 것이 재미의 본질이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재미가 더 생기는 게 재미의 선순환 구조이다. 장기하의 노래 ‘나는 별일 없이 산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너도 나도 짧은 인생이다. 좀 가볍게 재밌고 즐겁게 살다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