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10% 성장과 10배의 성장

by 장용범

세상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 확신이 대단해서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좀 특이한 사람들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양극단인데 큰 사기꾼이 되거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시대의 리더가 되기도 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1953년도에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국을 보면서 앞으로 이 나라는 70년 후에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이 될 것이며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기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전쟁 후 독일과 일본이 다시 일어선 것이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들에겐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앞선 기술과 사회적 인프라가 있었던 산업국가였다. 그러기에 연합국에 패전 후 사람들을 추슬러 같은 것을 반복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군용차를 만들던 실력으로 승용차를 만들면 되고 군함이나 잠수함을 만들던 공정을 유조선이나 상선으로 만들면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던 농업국가였다. 독일이 재건한 것을 두고 ‘라인강의 기적’이라 하지만 사실은 전쟁 후 한국이 지금처럼 성장한 것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지금의 개도국들이 선진국의 성장모델을 따라 한다는 건 맞지 않겠지만 한국의 성장 모델을 따라 하는 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죽을 고생을 했던 국민들도 있었지만 흩어진 힘을 한데 모아 미래의 방향을 제시했던 과대망상증을 지닌 듯한 정치적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을 읽다가 10배 크게 생각하라는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10% 성장을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지만 10배(1,000%) 성장하는 데는 경쟁이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사람들은 그런 말 하는 사람을 정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 터 위에서 울고 있는 한국인에게 위로랍시고 ‘힘내시라. 당신은 70년 후에 자동차는 기본이고 겨울이면 따순물 여름이면 에어컨을 트는 집에 살게 된다. 고기는 살찐다고 일부러 먹지 않고 외국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는 자력으로 유조선과 전투기, 미사일을 만들어 내고 자동차와 세계인들이 갖고 싶어 하는 가전제품과 휴대폰을 만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면 어디서 염장 지르냐고 몽둥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행일 테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우리가 보여 주었다.


며칠 전 후배와 점심을 먹다가 나온 이야기다. 자신도 이제 퇴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매월 200만 원 정도의 안정된 소득이 계속 나오는 수준이면 좋겠다며 나의 은퇴 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내가 돈벌이는 모르겠고 그냥 재미있어 보이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그것부터 해볼 참이라 하니 이상한 듯 본다. 은퇴 후 매월 200만 원 수준의 소득이 일정하게 나오려면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은 대개 상식 수준이다. 기본임금을 받는 알바 자리나 운 좋으면 이전 직장의 계약직 취업 프로그램에 편승하는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은퇴 후 매월 2,000만 원의 소득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생각의 틀이 기존의 사고에 머물러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이전 직장의 계약직으로 재취업하거나 알바 자리로는 불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배(1,000%) 크게 성장하는 것이 10% 성장하는 것보다 꼭 100배 더 힘든 것은 아니지만 보상은 100배 더 크다는 그 말도 맞다.


그렇다면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서 3만 달러로 성장했던 그 성장 방식을 개인에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내가 보기엔 우선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당시 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였다. 만일 할 수 있는 것에서만 길을 찾았다면 좀 더 농사 잘 짓는 법만 연구하는 데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니 첫째, 먼저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하고 그다음에 그것의 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는 것’이다.


둘째,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야 된다. 기껏해야 강화도 화문석이나 만들 줄 아는 나라가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전략은 그야말로 과대망상 그 자체이듯 은퇴 후 200만 원이 아닌 2,000만 원을 벌고 싶은 사람은 남들이 하지 않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과정 관리이다. 이것은 정치성향을 떠나 만일 전쟁 후 한국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고른 발전을 위해 국가적 에너지를 분산했다면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직 경제, 나머지는 나중에라는 뚜렷한 원칙이 자원 분배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었다. 당시 분위기를 기억한다. 양담배를 피우면 벌금을 물리던 시절이었고 막걸리는 밀가루로 만들어야지 쌀로 만들어선 안 되었다. 국가의 분위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병영국가 같았다. 그리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철저하게 과정 관리를 해 갔던 것이다.


10% 성장은 경쟁도 심하고 어렵다. 하지만 10배 성장은 다른 운동장에서 뛰는 게임이니 오히려 승산이 있다. 하지만 조심할 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큰 사기꾼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일 수도 있고 시대를 관통하는 위대한 리더일 수도 있다. 대체 그 차이가 뭘까 보면 아무래도 세 번째인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과정 관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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