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 삼성의 미국 반도체 투자

by 장용범

삼성 이재용 회장이 미국 텍사스 주에 20조 원에 이르는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귀국했다. 이 보도를 보며 미국 정부가 지난번 삼성에 요구했던 말도 안 되는 반도체 관련 정보 요구를 떠올렸다. 결국 강자에겐 이런 식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구나는 생각이 든다. 힘의 논리는 자연을 지배하는 질서다. 절대 강자는 모두가 자기 아래 조아리길 원하지 누구 하나 자신과 대등해지길 원치 않는다. 미중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것은 미국의 패권에 중국이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인간 세계나 동물 세계나 별반 다를 바도 없는 것 같다. 절대 강자는 유일하다. 나머지는 그 아래서 서열을 결정짓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힘이 없을 때 강자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정의롭지 못하고 부당하다고 아무리 외쳐본들 힘의 논리 앞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이인자는 일인자에게 최고의 총애를 받는 위치에 있지만 동시에 가장 큰 경계의 대상이다. 이인자가 살아남는 법은 오직 일인자에게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일인자 보다 더 큰 힘을 키울 때까지이다. 그러니 국가도 아닌 일개 기업인 삼성전자에게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련 정보 요구는 어떤 식으로든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미중 패권 구도 속에 우회적으로 미국에 반도체 공장 설립으로 나타난 것이라 여겨진다.


직장의 업무 관련 프로젝트로 만났지만 서로에게 끌려 10년 넘게 호형호제하는 컨설턴트가 한 분 계시다. 한 번은 나에게 경영에 관한 가장 현실적인 책을 추천한다며 ‘마피아 경영학’을 언급했다. 경영에다 온갖 이름을 붙이더니 이제 마피아 경영이라는 책도 있구나 싶었지만 내용은 궁금해서 서점에 들러 구입해 보았다. 별 인기도 없었는지 구석에 딱 한 권 진열되어 있던 책이었다. 정말 마피아가 지었는지 문장도 거칠었고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상한 책이지만 읽으면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 책의 내용 중 ‘두목’이라는 제목 아래 이런 글이 나온다.


‘명령을 내리는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유능하건 유능하지 못하건, 복종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자는 부하로 삼지 말라. 특히 그 부하가 유능한 자일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의 진화 흔적에는 이성에 앞서 본능에 충실한 파충류의 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번 삼성전자의 20조 원에 달하는 미국 반도체 공장 설립 결정을 보면서 동물의 세계 또는 마피아의 세계가 떠오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