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자주 듣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경제 활동기는 어느 정도일까? 신입사원 평균 입사연령은 31세라고 한다. 그리고 입사 후 퇴사하는 연령대는 49세 정도라고 한다. 50을 못 넘긴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건 좀 이상하다. 산수적으로 봐도 18년 정도인데 실제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직장인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 2개월로 나타난다. 그러면 그 짧은 15년 동안 남은 인생의 먹거리를 다 해결할 만큼 소득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은 집 하나 장만하기도 힘든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그러면 개인에게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 마련을 위해 비트코인이나 주식에 영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칫 대안이 아니라 나락일 수도 있는 위험성도 있다. 현실이 이러하니 지금의 신입사원들은 나와는 아주 다른 사고 구조를 가지는 것 같다. 우선 직장에 대해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관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평균 15년 정도 다닐 직장이라 여기면 현 직장에 대한 애사심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긴 하다. 그런데 나도 요즘 젊은 층으로부터 배우는 게 있다. 직장과 나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해 기대 수준을 높게 설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편함을 느낀다.
나에겐 명함이 두 가지다. 하나는 회사 명함이고 또 하나는 개인 명함이다. 그러게 된 계기가 있다. 작년에 사무소장 보직에서 물러날 때 회사와 나의 관계를 재검토하게 되었고 그동안 회사에 대한 나의 감정이 일방적 쏠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회사는 내가 그렇게 애착을 가질 만한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였고 내 시간과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보수를 받는 계약 당사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회사에 대해 다른 무엇이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았는데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올해 다시 사무소장으로 발령은 났지만 그날 이후 회사와 나의 관계 정리는 깔끔해진 면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작년의 그 사건은 차라리 나에게 잘 된 일이란 생각도 든다. 명함을 두 개 만들어 사적 모임에서는 개인 명함을 돌리다 보니 좋은 점도 있다. 내가 회사로부터 독립된 인간이란 생각이 드는 거다. 이제는 대표, 작가, 이사라는 호칭을 조금씩 듣는 편이다. 이번 기회에 명함을 좀 더 업그레이드해서 내가 불리고 싶은 호칭을 다시 표시하려 한다. 사람들은 내 명함에 따라 나를 그리 불러주니 이보다 간단히 나를 정의하는 법이 또 있을까 싶다.
‘업을 생각할 때에도 직업과 직장과 커리어를 각각 다른 형태로 생각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직업은 사회적 역할과 하고 싶은 업을 절충한 것이고, 직장은 인간관계나 근무 환경이 중요한 반면, 커리어는 개인적 목표와 훗날 쓸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것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 셋을 같은 것으로 봤는데 분화되는 것이죠.’_<그냥 하지 말라> 중에서
<그냥 하지 말라>의 저자 송길영은 지금의 시대는 혁신이 빨라지고 있어 내 업보다 내가 더 오래 사는 세상이니 꾸준히 나의 업을 현행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15년 정도 머물 직장이 나를 정의하는 전부인 양 사는 것이야 말로 불안한 직장생활이다. 그렇다고 퇴근 후 무슨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자기 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라는 것이다. “내가 삶에 꾸준히 적응한 결과가 성장이라는 생활 근육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훈장처럼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일해서 남는 성장의 결과는 나에게 경쟁력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한다. 하지만 이제 야근은 않는다. 휴가는 눈치 보지 않고 간다. 이제 회사의 일과 나를 분리하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 회사에 대한 원망이 있느냐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감사한 곳이다. 나에게 생활의 안정과 좋은 사회적 인간관계를 맺게 해 준 곳이다. 최근 대리점을 차린 사업단장의 초대로 강릉을 다녀온 후 좀 분명해진 게 있다. 그분은 퇴사 후 오히려 소득도 오르고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예전 하던 일에 대한 끌림이 없다. 긍정적인 것은 지난 20년 간 배웠던 일에 대한 체계 잡는 법과 과정 관리 등은 익혔으니 콘텐츠만 달리하면 될 일이다. 나는 나의 업에 비해 더 오래 살 것이고 직장을 그만둬도 남은 생이 더 길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나의 업을 꾸준히 현실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현행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세상의 변화를 즐기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 마음이 좀 가벼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