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을 못하기에 계속 성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의식주가 해결된 인간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퍼져 버리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지구의 지배적인 종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 질문자가 법륜 스님에게 자신은 외모 때문에 우울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스님의 답변에 공감이 있어 노트에 필사를 해 보았다.
“인생의 문제는 지금 당장 눈앞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항상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우선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현재에 안주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자기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삶에 활기가 생깁니다. 무언가에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어떤 욕망이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하루는 대학 4학년인 딸아이가 어떤 1학년생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고 했다. 그 말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의 대학 시절과 겹쳐지며 뜨끔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생각하며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랬다. 고등학교 때는 내신에 반영되는 학교 시험을 못 볼까 봐 근심했고 원하는 대학에 떨어질까 봐 불안했다. 대학에 가서는 병역문제가 불안했고 군을 제대할 무렵에는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늘 그렇게 불안감을 지니며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돌아보면 그럭저럭 잘 극복하며 지내온 것 같다.
지금도 이런저런 불안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마음 편한 상태를 꽤 오래 유지하는 편이다. 젊을 적 그렇게 불안을 달고 살며 오늘의 의미는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여기던 나였는데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것은 ‘나의 죽음’이란 걸 직시하고부터였다. 교통사고로 구르던 자동차 안에서 느껴지던 기억, 몸의 털을 깎은 상태로 나신이 되어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의 느낌을 통해 나는 죽음이란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은 후 그동안 흘려 들었던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그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도 마음은 수시로 미래에 갔다 과거로 갔다 하긴 한다. 불교에선 마음의 속성을 어디론가 가는 것이고, 한 번 갔던 곳으로 길이 나면 계속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아진 것은 여기가 아닌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는 ‘지금 여기’로 다시 끌고 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스님의 말씀처럼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긍정적일 때 내 삶에 활력이 생겨난다. 어제는 퇴근하니 아내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뭔 일인가 보니 밖에 비가 오는데도 이불 빨래를 해서는 엊그제 샀던 건조기에 말렸다고 했다. 비가 오는데도 보란 듯이 이불 빨래를 하고 싶었단다. 사람은 큰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이 있다. 삶을 이루는 행복감은 이처럼 작고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말이나 글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인생의 나머지 문제들은 깃털처럼 가벼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