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휴가 중이다. 이번 주까지 수술 후 회복을 겸해 남은 연차휴가를 쓰고 있는데 어느덧 7일이 지났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직은 미완성인 과제를 하다 지치면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오늘은 수술 후 몸도 많이 회복되어 시내에 있는 도서관을 갔다. 몇 시간 집중하니 과제 진도가 제법 나갔다. 오후에 도서관을 나와 시내를 산책하기로 했다. 평일 시내 고층빌딩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빴지만 나는 느긋하게 걸어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리 흐르는 것 같다.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의 느릿느릿한 행동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들은 시간의 부자들이기 때문일 거다.
느린 것은 왜 좋은 평가를 못 받을까. 경영학의 관점에서 보면 단위 시간당 생산량이 떨어지기에 그런 개인들은 비효율적인 노동자이다. 그런데 기업주의 입장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늘 시간에 쫓기며 허덕이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게 부지런해야 한다는 가치관은 어떻게 심어진 것일까. 우리는 왜 좀 더 효율적인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에 가까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야 취업을 해서 먹고살 수 있으니까라고 하면 수긍도 된다.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기업은 점점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굳이 많은 사람들이 필요 없고 운 좋게 대기업에 입사해서 임원까지 올라가더라도 평균 54세 정도면 직장을 떠나는 현실이다. 이 시대는 청년이 사회에 나와 한 가지 직업만으로 은퇴를 맞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환경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구조는 중간층이 엷어지고 소수의 고급 노동자들과 다수의 하층 노동자들로 양극화될 거라는 불길한 전망도 나온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더 잘 살 것 같았지만 오히려 더 살기 힘든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개인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세워볼 만하다. 세상의 변화를 내가 바꿀 수 없다면 적어도 그 변화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다가오는 변화를 불안해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도 없으니 그냥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좀 나아질 선택의 여지가 있으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 말고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개인이 따라잡기 힘든 변화의 속도라면 내 속도를 내가 유지하며 천천히 가는 것이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러해야 한다는 건 완전 내 생각일 뿐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일단 그것을 수용하자. 그렇다고 내가 꼭 세상의 흐름에 맞춰야 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이는데 각자가 다른 인생이고 인생의 정답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가 생각난다. “아니, 그게 정답이다. 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회사 앞을 지나쳤다. 한 동안 출근을 안 했더니 저 건물을 행인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냥 서울시내 여러 회사들 중 하나일 뿐이다. 어떤 감사한 인연으로 입사했지만 계약관계가 끝나면 나와야 할 곳이다. 개인에게 회사란 원래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