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역 문인협회 편집회의에 참석했다. 퇴근 후 갔던 터라 교정 작업은 회장님이 주관하시어 다 마치셨고 내가 따로 할 일은 없었다. 편집 국장직을 맡긴 했지만 회원들의 글을 모아 출판사에 전달하는 역할만 했던 터라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선배 문인들께서 수고했다는 말씀들을 하시니 좀 쑥스러웠다. 아무래도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 연세 드신 분들보다는 빠르다 보니 올해 문집 발간에 작은 도움이 되었나 보다. 편집후기도 내고 책 마지막엔 편집국장이라고 이름까지 올려 주셔서 내가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더니 모두들 웃으신다. 유쾌하신 회장님 덕분에 한 번씩 모일 때마다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한 편이다.
요즘 회사일을 벗어난 모임 참여나 활동들이 늘어나 퇴근 이후나 주말 일정이 좀 짜여 있는 편이다. 다행히 연말까지 소진해야 할 휴가 일수도 남아 있어 적절히 안배하며 시간 조절을 하고 있다. 피곤함보다는 재미를 느끼거나 즐거움이 더 크다. 직장인들 대부분은 활동영역이 거의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다. 주중에는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고 가끔 동료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지만 주말이면 집에서 쉬거나 골프, 등산 등의 여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활동영역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블라디보스톡 여행이었다. 당시 내가 서있던 태평양을 바라보던 독수리 전망대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에 있다는 감회가 남달랐는데 마치 우믈안 개구리가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 이후 대륙 관련 모임이나 배움의 장을 찾게 되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직장을 벗어난 활동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지금은 대륙 관련 모임뿐 아니라 다른 모임의 운영진에도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사회적 관계가 대부분 끊어진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 이유는 직장인들의 인간관계가 주로 직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 중심의 이해관 계기 때문이다. 이는 직장 플랫폼을 벗어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그렇다면 관계의 플랫폼을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회사일도 바쁜데 언제 그럴 시간이 있냐고 하면 계속 그렇게 살면 될 것이고 그럼에도 이건 좀 아니다 싶으면 다른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면 될 것이다. 나는 경험상 후자를 추천한다. 직장의 일을 통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이룰지는 몰라도 그것은 회사라는 플랫폼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현타는 ‘언젠가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는 것이다.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서는 좀 다양한 관계성을 유지하는 편인데 이를 통해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직장 외의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나는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먼저 자신이 끌리는 분야를 찾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시간과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있다. 직장인에게 시간은 소중한 자원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자원을 자신이 끌리는 분야에 투여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내가 골프를 안 배운 이유가 별로 끌림이 없기도 했지만 배워 두면 주말마다 원치 않는 골프 사역을 할 것 같아서다. 때문에 상사들로부터 한 소리 듣긴 했지만 ‘못 칩니다’라는 한 마디면 나의 주말 시간이 확보되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둘째, 배움을 취미로 가지면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왕이면 학원보다는 모임에 들어가는 게 좋은 것 같다. 학원은 돈을 주고 배움을 사는 곳이지만 동호회 모임은 아마추어의 열정으로 순수함이 있다. 토잌처럼 당장 점수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관련 모임을 찾아보고 꾸준한 참여를 통해 배움도 얻고 사람도 얻어 보자.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매주 토요일 아침 8시에 진행되는 경영 관련 영어토론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시내의 카페에서 10명 내외가 모여 영어 토론을 진행했는데 나중에는 그 안에서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으로 이어지는 커플도 있었다. 토요일 아침 8시에 경영을 주제로 한 영어 토론 모임에 누가 나올 것 같은가. 그들은 주로 20-30대의 남녀 직장인들이었는데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직원, 회계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컨설턴트 들이었다. 거기서 나는 영어도 영어지만 그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문화적 충격도 받았는데 점심을 먹고 계산하는 방식이 카운트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각자가 먹은 음식을 각자의 카드나 현금으로 계산하는 모습이었다.
셋째, 모임의 운영진이 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모임에 자주 참석하다 보면 운영진이 될 기회가 생긴다. 이럴 땐 마다하지 말자. 보통 그런 모임은 느슨한 연결의 관계로 운영진은 봉사자의 역할이 강하다. 운영진이 되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는 적극 참여해 보자. 시간이 없다는 말은 가기 싫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시간은 나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낼 수 있다는 게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넷째, 느슨한 인간관계 맺는 것을 즐기자.
어느 책에 보니 취업이나 이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람보다는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왜 그런고 하니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시간이나 공간이 겹칠 경우가 많아 경험치가 비슷한 수준이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취업이나 이직 같은 루틴 하지 않은 새로운 문제와 연관된 일들은 좀 다른 경험치의 사람들이 필요한 경우다.
다섯째, 모임을 직접 만들어도 보자.
찾아보면 내가 원하는 모임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모임은 나 외의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되지만 최소 세 명만 모이면 안정적인 모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고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재미와 의미를 부여하면 모임은 활성화된다.
나는 요즘 직장생활 외의 끌리는 모임들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챙겨가고 있다. 회사라는 우물을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에는 크고 작은 우물들이 여럿 있었다. 내가 전부라고 여겼던 회사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안에서만 바라보다 밖에서 내가 다니는 회사를 보는 느낌은 좀 생경할 때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회사와 개인은 대등한 관계가 될수록 개인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