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꿈은 이루는 게 아니다

by 장용범

이어령 선생이 암 투병 중인가 보다. 이 어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교수,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연출가, 초대 문화부 장관, 신문사 논설위원 등. 한 사람의 문인이 이처럼 영예를 누릴 일도 드물지만 87세의 나이에도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건 대단해 보인다. 1931년 생의 전두환, 1934년생의 이어령이라는 두 인물은 이 땅의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이지만 삶의 궤적이 많이 다르다. 88 서울 올림픽과 연결 지어 보면 한 사람은 올림픽을 유치했던 인물이고 한 사람은 올림픽의 개페회식을 연출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까지 대중들에게 영향력 있는 메세지를 던지는 이가 누군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어령 선생인 것 같다. 암투병 중인 이 분의 인터뷰 내용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자신이 한국 사회에 전하는 유언 같은 내용이다. 무엇보다 저 연세에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멈추지 않고 탐구를 지속해 온 열정이 돋보인다.


책장을 넘기다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라는 데 눈이 머문다. 그는 사람이 꿈을 이루고 나면 다음은 꿈을 깨는 일만 남는다며 계속 꿈을 꾸라고 한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말 중에 ‘현타’라는 말이 있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로 한 마디로 ‘꿈 깨’라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꿈은 계속 꾸는 게 좋을까, 깨는 게 좋을까? 영화 매트릭스에는 저항군을 배신한 레이건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현실의 빈곤과 위험한 상황에 지쳐 그냥 매트릭스라는 꿈속에서 살기로 한 인물이다. 그가 스미스 요원을 만난 자리에서 스테이크를 찍어 들고 했던 말이 ”나는 이게 진짜가 아나란 걸 알지.. 하지만 지난 9년 동안 깨우친 게 뭔지 아시오?.. 모르는 게 약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힘들다고 하는 것은 혹시 꿈의 문제는 아닐까? 이제 국민소득 3만 불을 넘긴 선진국이 되었다고도 하고, 한국의 문화에 세계가 열광하는 상황이지만 여기저기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 절대빈곤 시대를 거쳐온 70-80대는 이게 뭐가 힘드냐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니 이번에는 소통이 안 된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이건 꿈의 문제 같다. 7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에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에 문제가 없었고, 신혼집은 비록 단칸방 전세에서 출발해도 조금씩 모아 내 집 마련도 하고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늘려가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꿈을 이야기 하기가 점점 어려운 여건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꿈이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힘든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는 것 같다.


노학자가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라 할 때 한쪽에서는 꿈을 꿀 수 없다고 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느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소확행을 하라는데 그러면 무슨 발전이 있겠냐고 발끈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는 자기중심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꿈을 꿀 수 없는 것이 혹시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이전의 꿈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이전의 꿈은 팍팍한 현실이 되고 말았는데 그 현실을 꿈으로 꾸려고 하니 안 되는 것 같다. 이제 다른 꿈을 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각자가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우리는 지금껏 주어진 것을 받아하는데 익숙하지 스스로 찾는 것이 낯설다. 그럼에도 이제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여건은 아니니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꿈도 그렇다.


1931년생과 34년생으로 한국의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전두환과 이어령이다. 이들이 스쳤던 분기점이 88 서울 올림픽이었는데 한 사람은 그 후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었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지금껏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게 진짜가 아니란 걸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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