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어쩌면 다른 문이 열려 있을지도

by 장용범

세상에는 할 일이 참 많다. 그런데 왜 할 만한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 일은 곧 돈이라는 등식으로 세상의 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라보면 할 만한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럴까? 지금 돈이 돌고 있는 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넘쳐나는 상황이니 할 만한 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돈은 자신의 그림자 같은 속성이 있다. 내가 내 그림자를 잡으려 하면 계속 달아나지만 그냥 내 길을 가다 보면 그림자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처럼 돈도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청년들 중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들은 4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언젠가 한 서울대생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하여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 논란이 된 일이 있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35:1이다. 이 말은 34명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 취업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공무원의 최대 장점은 대기업처럼 높은 소득은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오래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마구 성장하던 70-80년 대에는 9급 공무원의 인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때는 박봉인 9급 공무원 월급으로 어떻게 살겠냐며 돈이 조금만 모여도 사업을 하고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청년들이 안정을 찾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현 상황은 우리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제 딸아이가 우리나라 학교의 문제점이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학생이 따르고 싶은 선생님 반을 갈 수 없는 것, 함께 하고 싶은 친구와 같은 반을 할 수 없는 것,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급식, 훨씬 잘 가르치는 데도 교사 자격증이 없어 가르칠 수 없는 교육 현실을 언급하기에 꽤나 신선했다. 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다. 정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보면 오늘날 학교는 교사와 교직원을 위한 직장의 개념으로 변모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강의 잘하는 학원 강사나 인강의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 다시 학교에 가서 강의력에서 떨어지는 선생님의 강의를 또 들어야 한다. 만일 학교가 가르치는 게 교과목만은 아니고 인성도 있다고 하면 강사로서의 선생님과 교육자로서의 선생님은 구분지어야 할 것이다. 요즘 메타버스에 꽂혀 있는 나는 딸아이에게 네가 꿈꾸는 그런 학교를 메타버스 상에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메타버스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이라는 아이의 반박이 또 흥미롭다. 자신들은 어릴 적 싸이월드에서 다 그러고 놀았는데 갑자기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상현실을 다룬 일본 만화영화 ‘썸머워즈’를 추천하는데 이 영화가 2009년에 나왔다고 했다. 싸이월드라는 말만 들었지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내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것이 오늘날의 메타버스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결국 너무 빨리 나와 사라졌던 한 기술이 코로나로 인해 재조명받은 셈이다. 더 큰 이유는 사람들이 코로나를 계기로 비대면 활동에 익숙해졌다는 것이고 그에 맞춰 자본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도 돈 없는 10대, 20대만 향유하는 문화라면 발전하기가 어렵지만 사회의 부를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50대 이상 중년, 노년층이 움직인다면 새로운 경제 활동 영역이 생겨난다. 지금 Google, MS, 페이스북, 네이버, SK처럼 자본력 있는 거대기업들이 메타버스로 움직이는 이유가 이제는 중년층 이상의 사람들까지도 비대면 활동을 받아들이게 된 때문이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기업에 있어 이건 큰 사업의 기회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거지 일단 수용하고 나면 그것은 일상이 된다. 일상은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분명 시대의 변환기이다. 하지만 여섯 시에 문 여는 노량진 학원가에서 강사 가까운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 1시 반에 나왔다는 한 공시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어제 퇴근시간에 겪은 일이다. 회사 회전문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한꺼번에 쏟아진 사람들이 한 번에 몰려 생긴 현상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 줄에서 벗어나 옆의 출입문을 밀고 나갔다. 그 문도 열려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는 과거의 문은 한정되어 좁고 경쟁도 심하지만 새로운 문은 열려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적으로 회전문 하나만 바라보고 줄을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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