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 나의 새로운 도구(2)

by 장용범

어릴 적 학교 가기 싫을 때면 나와 똑같이 생긴 가짜의 나를 학교에 보내고 진짜인 나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더 잤으면 하는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어머니의 일어나라는 소리에 마지못해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릴 적 꿈꾸던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메타버스의 시대이다. 나와 똑같이 생기진 않았지만 화면 속의 이 아이는 가상의 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진짜인 내가 조종을 해야 하지만 어쩌면 훗날에는 반복적이고 루틴 한 일들은 지정해 주면 스스로 할 날이 올 것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메타버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다. 마치 수년 전 비트코인을 이야기하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당시엔 사무실 근처에 비트코인 거래소도 있었고 지하철 기둥엔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판도 여럿 보았지만 일단 의심스러웠다. 주변에서 가상화폐에 투자한다고 하면 우려의 말로 만류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속에 가상화폐의 가치가 조금씩 인정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용산전자랜드에서 메타버스 경진대회를 한다기에 일단 신청을 했다. 작품을 낸다기보다는 그전에 실시하는 사전 교육을 듣고 싶어서다. 줌으로 실시된 강의에서 게더타운에 대하여 소개받았다. 메타버스는 그 종류가 여럿인데 국내에는 네이버의 제페토와 SK의 이 프렌드 등이 있고 외국에는 미국의 로블록스와 게더타운 등이 있는 것 같다. 강사의 안내를 받아 가상공간 속의 용산전자랜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일은 그냥 이차원 게임이었다. 다만 화면 속 나를 표시하는 한 아바타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만 다를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자주 쓰면 익숙해진다는 믿음이 있어 강사의 강의를 듣는 수준으로 따라갔지만 메타버스의 미래 가능성을 찾느라 머릿속은 조금 복잡했다.


화면 속 아바타가 옆의 아바타에게 접근하면 상대의 실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열려 화상대화가 가능했다. 여럿이 모인 강의장 같은 곳에선 강사가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줌 강의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어떤 물건 가까이 가서 선택을 하니 그 물건을 나타내는 별도의 창이 뜬다. 온라인 쇼핑몰과 결합하면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관이라는 간판 안으로 들어가면 영화 한 편을 골라 볼 수도 있겠다. 이리 보면 메타버스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 이를테면 쇼핑, 게임, 영화, 화상통화, 채팅, 이메일 등을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게 한 플랫폼이다. 결국 지금처럼 SNS나 온라인 쇼핑몰, 넷플릭스, 유튜브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활동들을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이 모두 품은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OK!, 메타버스에 관한 개념은 잡혔다. 그럼 대체 이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냥 유명한 메타버스 플랫폼에 계정 하나 만들고 이용하면 되는 거지 왜 그리 호들갑인가 싶다. 그런데 나의 이런 시니컬함이 깨지는 순간이 왔다. 강사는 두 시간 동안 게더 타운의 온갖 기능들을 설명하고는 질문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나는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메타버스 상에 공간을 만들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할 텐데 그 방법은 무엇인가? 둘째, 용산전자랜드에서 주관하는 경진대회인데 참가자가 대체 뭘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가. 가상의 용산전자랜드를 내 식대로 꾸미기라도 하라는 거냐?’고 물었다. 강사의 답변이다.


‘메타버스상에 여러분의 가상공간을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공간 홍보의 영역이다. 하지만 불특정의 모든 사람들을 내가 만든 공간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SNS 상에도 친구 맺기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오히려 진상 방문객 때문에 다른 방문객들이 내 공간을 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출할 것은 여러분이 만든 가상공간이고 그 공간과 용산전자랜드를 링크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공간을 얼마나 개성 있게 만들었고 주최 측인 용산전자랜드를 얼마나 잘 홍보했는가가 이 평가의 주안점이 될 것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번쩍하는 느낌이 왔다. 나는 여전히 현실의 공간과 가상공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공간’이라는 단어에 사고가 경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메타버스는 공간이 아니었다.


‘상상력의 한계가 가능성의 한계이다.’


자,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나는 지금 현실세계에서 유명 메이커 제품의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장이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신발 가게나 K2, 노스페이스 같은 등산복 전문점 그리고 현대, 기아 자동차 대리점을 전시관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상당한 사업규모인 셈이다. 그런 나는 부동산 임차료나 인테리어, 직원 인건비 등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재고처리에도 골머리를 썩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리점을 내가 만든 메타버스 공간상에 입점시킨다면 어떨 것 같은가? 기업은 자신의 브랜드에 손상가지 않을 공간 수준이면 입점을 안 할 이유가 없다. 링크 하나만 연결시켜 주면 매출이 계속 일어나는데 왜 않겠는가. 대리점주에게 본사가 마진을 떼어 주듯이 메타버스 상의 공간 소유자에게도 매출의 이익을 일부 공유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나의 공간은 전 세계 누구나 접속이 가능하고 미국에서 접속한 제임스가 내 공간 속 나이키 매장에서 운동화를 구입했다면 미국의 현지 업체가 실물을 배달하면 되고, 국내의 철수가 구입했다면 한국의 나이키 업체가 배달하면 된다. 현실세계의 매장별 관리비나 재고관리가 필요 없게 된다. 기업의 입장에선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전 세계에 매장을 수없이 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나는 이런 공간을 메타버스상에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학원가를 만들어 입시 강의를 올려둘 수도 있고 입시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다. 만일 내가 법조타운을 만들어 각 나라별 변호사들을 유치한다면 어떨까? 메타버스라는 플랫폼 안에서 나의 플랫폼을 별도로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 상의 가상공간은 현실 공간에 갇혀 있는 사고를 벗어나야 제대로 보이는 세계다. 그리고 지금껏 SNS가 개인과 개인을 연결 지었다면 메타버스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 짓는 세상이다. 그 공간 안에는 내가 출입을 허락한 전 세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자, 이쯤 되면 메타버스의 가능성이 조금 보이지 않는가? 온라인 쇼핑몰은 내가 만들거나 입점해야 하지만 나는 링크만 걸어주면 되고 나머지는 입점한 업체에서 진행한다. 나는 현실에서는 부동산이 없지만 메타버스 상에서는 트럼프 같은 부동산 재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강남 사거리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인데 그만큼 공간 콘텐츠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반드시 NFT를 붙여 나의 IP(Intellectual Property)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가상공간에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시간의 강의를 듣고도 시큰둥했던 내가 마지막 질문을 통해 건져 올린 결론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본 느낌이 들어 가벼운 흥분마저 느낀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문제는 나의 가상공간에 말썽꾼들이 아닌 건전한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 방법이다. 그것은 결국 콘텐츠다. 공간의 매력도는 콘텐츠가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올라가는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니 좋은 콘텐츠가 있는 다른 이들과의 연대와 협력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간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브랜드에 관한 공부도 필요하다.


요즘 내가 좀 이상하다. 난 지금 오래 다딘 회사로부터 은퇴할 시점인데 새로운 기회들은 더 많이 보이고 할 일이 더 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것은 노트북 하나를 준비해 나이와 상관없이 진행할 수 있고 뭐하면 아바타인 나를 영원히 늙지 않는 30대 청년으로 둘 수도 있다.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날 통계치가 보여준다. 온라인 매출은 늘고 있는 반면 오프라인 매출은 줄어든다고. 우리는 점점 온라인 상의 가상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람이 모이면 경제활동은 자연스레 일어나는 법이다. 그것이 비록 가상공간일지라도. 동영상 편집 기능과 메타버스에 대한 자각, 이것이 지난 주말 건져 올린 나의 새로운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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