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 나의 새로운 도구(1)

by 장용범

주말 사이에 두 가지 신박한 경험을 하였다. 하나는 강의 동영상을 찍어 내 힘으로 편집을 마쳤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게더 타운(gather town)이라는 메타버스의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 다 느낌이 좋다. 뭔지 모르게 좋은 도구들을 손에 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익숙한 것이겠지만 50대 중반인 나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다. 그중 강의 동영상을 찍고 만들어낸 과정과 감동을 풀어본다.


강의 영상 제작은 대학원 과제였다. 그것도 전공이 아닌 이 러닝(e-learning) 학과의 과목으로 영상 제작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수강신청부터 하나의 도전이라고 여겼다. 타 학과 수강생은 내가 유일했는데 그만큼 관련 전공자만을 위한 수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있는데 어떤 프로그램이든 그 기능을 100%까지 알 필요는 없고, 필요한 기능을 용도에 맞게 잘 골라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용한 프로그램은 프리미어 프로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전공과목 과제인 단편소설을 일주일을 앞당겨 제출한 이유가 아무래도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제출하는 낯선 과제가 만만치 않아 보여서다. 과제를 수행하면서 지난주 독립출판 전시회서 만난 0.3미리 샤프연필로 동화그림을 그려낸 작가 겸 출판사 대표를 떠올렸다. 대체 이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 구상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지 정작 그리는 데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낯선 과제를 처음 받아 들고는 ‘어이구야!’ 싶었던 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행해 보니 역시 구상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비록 낯설었지만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태웠던 게 효과를 봤다.


먼저 마인드 맵으로 기본 구상을 해보았다. 이번 과제의 To Be는 무엇인가? ‘내가 출연한 15분 분량의 강의를 촬영하여 해상도 1280*720의 MP4 파일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As Is’는 무엇인가? ‘강의는 좀 해봤다. 교안 정도는 PPT 파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강의 영상이나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없고 다뤄 본 적도 없다’였다. 그러면 문제와 문제점은 명료해진다. 그리고 해결 방법으로 WBS를 적용해 보았다.


1. 강의 주제를 잡는다.

2. PPT로 15’ 분량의 강의 교안을 만든다.

3. 강의 영상을 촬영한다.

4. 편집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설치한다.

5. 강의 영상으로 편집 과정을 익히면서 편집한다.


이렇게 해결 과정까지 분해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명료해졌다. 1번, 강의 주제는 과거 반응이 좋았던 ‘문제의 정의와 해결방법’으로 잡았다. 2번, 교안 작업은 기본 마인드 맵으로 전체 구상을 하고는 PPT로 작업을 완성해서 제출했다. 3번, 강의 영상 촬영이 좀 난감하긴 했지만 이것도 평소 알고 지내는 사내 방송 PD를 퇴근 후에 만나 방송국의 크로마키 환경에서 20분 정도 촬영하고는 영상파일을 건네받았다. 4번, 편집 프로그램은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어차피 나에게는 낯선 것들이라 이왕이면 보편적인 프리미어 프로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마침 디자인을 배운 딸아이의 노트북에 깔려 있어 간단히 해결되었다. 5번 편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래도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라 조용한 카페에서 작업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인터넷 뒤져가며 더듬더듬 진행해 가는데 웬일인지 이어폰을 꽂았는데도 강의 목소리가 노트북 밖으로 크게 튀어나왔고 윈도우의 볼륨 조절로도 제어가 안 되어 한참 동안 카페에서 내 목소리의 강의가 진행되는 진땀 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얼굴을 화끈거리며 급히 컴퓨터 전원을 껐다. 그리고 다시 전원을 켰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튀어나와 다시 끄고는 그냥 짐을 챙겨 카페를 도망치다시피 나왔다. 아무래도 관련 책을 하나 구입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근처 교보문고에서 하나 구입하고는 집으로 왔다. 하지만 집에서도 여전히 낯선 프로그램을 붙잡고 있으려니 스트레스는 쌓이고 풀리지 않는 기능들을 해결하고자 종로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전화도 해보고, 조교에게 쪽지도 넣고, 주말에 쉬고 있을 사내 PD에게도 연락하는 등 온갖 진상이란 진상은 다 부린 것 같다. 그렇게 촬영에서 편집까지 금토일 주말을 꼬박 매달린 결과 마침내 최초의 내 강의 영상 하나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을 보니 그리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혼자 좋아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주말 동안의 심한 마음고생 때문인지 내가 만든 완성작이 너무도 대견해 보여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동아리 회원들에게 돌리고, 1인 창 직방에도 올렸으니 나도 참 심한 푼수 짓을 했다 싶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 그런데 이렇게 한 단계 올라서고 나니 이번에는 좀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제 강의 영상을 찍고 편집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으니 자막을 영어로 만들어 유튜버에 올리면 어떨까 싶었다. 아내에게 나의 이런 계획을 이야기하니 정말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다. ^^;


나는 요즘 직장 명함 쓸 일이 거의 없다. 대신 개인의 관심사와 활동 반경을 조금씩 넓혀가다 보니 퇴근 후나 주말에는 내가 만든 개인명함을 건네고 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직장을 벗어나서 까지 직장 명함을 돌리는 게 더 이상한 짓이다. 내 개인 명함의 직업은 ‘출판 기획가’이고 회사 이름은 ‘책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 회사가 있냐고 하면 아직은 없다. 하지만 생길 수도 있다. 엉뚱하지만 나는 지금 미래의 하고 싶은 직업의 명함을 미리 돌리는 셈이다. 그러면 사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만일 그 명함을 받은 누군가가 책을 쓰겠다고 연락이 온다면 나는 기꺼이 출판을 기획하고 책을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POD 출판의 경험도 있고 이번 과제처럼 좀 헤매기는 하겠지만 어떡하든 만들어는 낼 것이다.


얼마 전 참석한 한국-러시아 문화 포럼에서는 사회자가 나를 작가 및 칼럼니스트로 소개하기에 살짝 당황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공식 석상에서 내가 그렇게 소개되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소개가 낯설지만 좋았던 이유는 지난 30년 동안 수동적으로 주어졌던 직장의 직함이 아닌 나 스스로 만들어 낸 직명에 이름을 붙여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틀린 소개는 아니었다. 이미 등단을 거쳤고 이번 달에는 한국문인협회 작가로 등록되었다는 연락도 받은 상태이며 나의 주된 글쓰기 영역이 칼럼 분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즘 재미난 일이 많다. 나이 50대 중반에 이렇게 흥미로운 일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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