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 공간을 만들어 보다

by 장용범

토요일 아침부터 딸아이의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에 갔다. 내년 초 오픈 예정인 인물화 전시회를 위해 메타버스 내 공간을 하나 만들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금방 끝나겠거니 했는데 짓고 부수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오전에 갔다가 점심도 건너뛰고 붙잡고 있었으니 상당한 몰입을 한 셈이다. 결론은 온종일 만들었던 공간들을 다 지워버렸다. 만들고 나면 배치가 마음에 안 들고 좀 마음에 든다 싶으면 어떤 기능 빼먹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컴퓨터가 286 시절 삼국지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 자주 밤을 새우던 적이 있었는데 묘하게 그때가 생각났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거의 7시간을 머물렀으니 나 같은 손님만 있다면 카페 매상에 큰 지장을 줄 것 같다. 그럴 것 같아 일부러 큰 카페에 가긴 했다.


Back to the Basic.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만히 보니 체계가 없는 것 같아서다. 우선 노트북을 덮고 종이 위에 가상공간 만들기 프로세스를 정리해 둔다.

1. 공간 크기를 정한다.

2. 공간배치를 구상한다.

3. 그룹 단위의 대화가 가능한 구역을 설정한다.

4. 사람의 동선을 그려 본다.

5. 컴퓨터 작업으로 바닥을 깔고 벽을 세운다.

6. 가구 등 다른 오브젝트를 배치한다.

7. 한 번에 다 하려 말고 조금씩 만들어 간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냥 무작정 달려들다 보니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했나 보다. 백지상태에서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반복하고 실습을 하는 가운데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미로를 헤맸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상공간에 뭐 하나 짓는 것도 이렇게 고려할 게 많은데 실제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은 어떨까 싶다. 비록 가상이긴 했지만 하루 종일 공간을 다루다 보니 공간을 조금 이해하게도 된다.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땅에다 벽을 하나 세우는 것으로도 공간은 구분된다. 벽은 횡적인 공간구분인데 물리적 공간이 구분되면 심리적 공간도 달라진다.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또한 공간은 권력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왕릉을 보면 권력자는 죽어서도 저렇게 큰 공간을 차지하는구나 싶다. 공간의 크기가 권력의 크기이다. 사장실을 떠올려 보라. 그런데 이런 공간은 사람의 마음에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의 공간도 실재 공간 다루듯이 할 필요가 있다. 마음이 사람들에게 너무 열려 있으면 나의 사적 공간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늘 사적 공간에만 머문다면 마음의 감옥 같은 곳에 갇히고 만다. 나를 편안하게 하는 사적인 공간과 남과 함께하는 공적인 공간이 적당히 어우러질 때 건강한 마음의 공간이 확보된다.


가상공간이라 얼마든지 큰 공간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여러 고민 끝에 결국 메타버스 내 작은 공간을 2층으로 만들기로 했다. 너무 큰 공간 속에 작은 아바타가 길을 잃고 헤매기보다는 작고 아담한 공간을 만들어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공간 설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때 가서 공간을 더 늘리면 되겠다. 어차피 건축비 드는 것도 아니니 그것 만큼은 자유롭다. 이게 다 처음에 너무 큰 공간을 만들어 나중에 뒷수습을 못해 내린 결론이다. 비록 가상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리 큰 공간이 필요 없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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