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명예퇴직 기사가 떴다. 전년대비 대폭 늘어난 인원인 809명이 신청을 했다고 한다. 나의 상사 분도 신청을 하셨는데 휴가 중인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수술 후 안부도 물을 겸 연락했다는데 당신의 심난한 심정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시원섭섭하시겠다고 하니 속내가 정말 그렇다고 하신다. 30년 넘게 근무한 직장이라 여러 생각이 많으셨을 것 같다. 만해 한용운은 이별에 대한 소회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그 시기의 길고 짧음이 있을 뿐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이를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
늦은 나이에 깨달은 관계에 대한 삶의 방편이 하나 생겼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는 관계에서 끊임없이 손익을 계산하는 중생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이것이 더 이득이 된다는 사실이다.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 나에게 더 이득이 되는 원리는 이러하다.
첫째,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상황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는 것이다.
둘째, 내가 기대하지 않으니 비록 상대가 해주는 것이 없더라도 실망스럽거나 원망심이 안 일어난다. 적어도 나의 감정 통장에 마이너스는 생기지 않으니 괴로움이 없다.
셋째, 기대를 하지 않음에도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면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넷째, 하는 것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니 그 과정의 몰입감과 즐거움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
원리가 이러하니 관계들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나에게 좋은 것이다. 붓다는 이런 역설적인 인간관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했다. 기대하지 말고 하라는 것인데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버리라는 의미이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30년이 넘는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 참 대단한 이력이다. 너무 오래 근무한 탓일까. 그분은 회사가 뭔가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만 마음은 좀 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개인과 직장의 관계는 노동에 대한 보상을 주고받는 관계이지 더 이상의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이것이 개인이 회사에 몸담고 있더라도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기대하지 않는 것. 그런데도 무언가를 나에게 해주면 이 회사가 고마운 것이다. 인생을 좀 가볍고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상대에 대해 크게 기대 않고 살아가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