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조금씩 나아가기를 권함

by 장용범

가끔 아이와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이제 대학교 3학년이 되니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나 보다. 더구나 지금 같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대학문을 나선다는 자체만으로 얼마나 불안할까 싶다. 내가 이 시기의 20대가 아님에 감사할 정도이니 저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진다. 엊그제는 취업에 유리할 것 같은 보험계리사 공부에 대한 고민을 하며 그 전망에 대해 물어온다. 한 번 시작하면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으니 첫 발을 잘 내딛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내가 보험이라는 금융업종에 있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회사에는 보험계리사들이 꽤 많다. 오가며 만나는 그들은 그냥 평범해 보이지만 보험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먼저 보험계리사라는 자격을 취득했던 재원들이다. 분명 입사에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정말이지 나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국내 보험사들은 포화 상태라 조만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보험사들의 구조조정이 공공 연하게 예견된다. 그러면 시중에는 보험계리사 자격에 경력까지 갖춘 인력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고용시장은 당연히 경력이 많은 보험계리사들을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저 일을 곁에서 지켜보니 웬만한 적성 아니면 해내기 어려워 보였다. 숫자의 정밀성을 다루는 업무다 보니 야근도 심심찮게 하는 것 같고 나에게 맡긴다면 손사래 치고 싶은 일이었다. 그야 사람마다의 적성이 다르니 그렇다 쳐도 마지막 이유는 직종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를 사안인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보험사의 등장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 굴지의 회사들이 온라인 보험회사를 하나 만들었는데 보험회사라면 떠오르는 영업하는 설계사들이나 보험상품 개발 등 몇몇 핵심적인 업무들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처리되는 회사였다. 이 보험사는 그냥 모바일과 온라인 기반에서 통계를 수집해 보험상품을 척척 만들어 내고 영업은 온라인으로 수행하는 정말 특이한 보험회사였다. 그러니 이 회사가 당연히 영업이익 규모가 좋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새로이 취득한 보험계리사라는 자격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전망이 어찌 보험업종뿐일까. 지금의 시대에 전문 자격증 하나를 취득해 평생 안정적인 직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의사나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같은 전문 자격증의 단점은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장점이 아니고 단점이다. 이게 왜 단점이냐면 기존 시장에 진출한 사람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신규로 진입한 이들에게는 소위 먹을게 별로 없는 체증식 직업구조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딸아이에게 확실한 답변을 주지는 못했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대신 어떤 결정을 할 때 너무 장기적으로 보지 말라는 얘기는 해 주었다. 특히 중요한 선택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그냥 스스로 객관식 문제를 하나 만들어 사지선다를 구성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 그냥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한 번 선택했으면 중간에 싫은 마음이 일어나도 최소한 100일 정도는 꾸준히 해 보는데 그 후에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좀 더 해 봐야겠다 싶으면 한 번 더 기간을 그 정도로 설정해해보라고 했다. 이 방식은 앉아서 머리로만 고민하지 않고 직접 경험을 하면서 진행하다 보니 이전과는 다른 경험치가 생겨난다. 이게 잘 모르는 무언가를 탐색해 가는 효율적인 방법 같다.

딸아이는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며 일어섰다. 이 시대가 청년들이 독립하기가 어려운 시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도 20대 때 그런 불안한 시기를 겪긴 했다. 지금에서야 386세대는 최고의 수혜를 받은 세대라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이 결코 녹녹지 않음은 사실이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무언가를 행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주를 해결할 것이고 여러 관계들로 인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다 보면 어느새 나이는 점점 들어 인생 참 짧다라는 소리를 하겠지. 요즘 내가 느끼는 인생이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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