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런 사람이 있었다.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일찍이 육영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나중에 미국에 부공사직의 외교관으로 부임하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유럽 등 세계여행을 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런 그가 자신의 나라에 돌아와 보니 허수아비 임금이 하나 앉아 있고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정권을 서로 잡으려고 외세까지 끌어들여 피 터지게 싸우는 중이었다. 게다가 국모라는 그 며느리는 허구한 날 나랏돈으로 굿판을 벌이고 있고 친정집 식구들은 돈을 받고 관직을 팔아넘겼다. 이 똑똑한 사람은 상황판단을 해 보았다. 이 나라 조선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누구보다도 돌아가는 세상을 잘 아는 그로서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라를 팔아넘기는 큰 사업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 대상을 물색하다 가장 유망해 보이는 일본으로 정한 것이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이완용 평전이란 책을 들고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기술한 전기라 함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나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여겼는데 그는 누구나 다 아는 매국노이지 않은가. 끌리듯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그는 정말 탁월한 능력과 판단력을 가진 인재였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이런 사람이다. 행정고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젊은 엘리트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주미 한국 대사관에 부임하게 된다. 국가에서 경비를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세계 각국을 다니며 견문을 넓혔고 돌아와서는 승승장구하여 장관직까지 올랐다. 뭐 이런 정도이다. 지금으로 보더라도 그의 경력은 화려하고 관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했을 만한 인물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당시의 힘없던 조선은 제국주의 광풍 속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 서로 먹으려고 하는 정말 희망 없던 나라였지 않은가. 똑똑한 그의 상황판단은 논리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출세라는 것을 더 많은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는 아주 큰 출세를 한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못했다면 그는 역사적 위인으로 교과서에서 가르칠지도 모른다. 우리의 독립은 우리 스스로 했다기보다 2차 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서 조선이 독립을 당했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독립을 당했다. 당시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시킬 힘도 없었다. 3.1 운동, 안중근, 윤봉길 의거가 있었지만 조선에 대한 일제의 억압은 더욱 강해지고 일본은 만주에 진출하고 동남아 대부분을 손에 넣는 등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제국을 형성하고 있어 당시 똑똑했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현실을 수용하고 친일로 돌아선 것이다. 그 상황에선 독립운동을 한다는 게 더 이상해 보였을 것 같다.
나는 이완용 평전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한 인간이 주변의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부와 권력을 얻어 가는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무언가 잘못되었다. 모든 게 완벽한데 한 가지가 부족하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세속적인 부와 권력을 가졌더라도 그는 한낱 일본의 개에 불과했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그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질문이 참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만 그 답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