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잘 가라, 서대문 통술집

by 장용범

뉴스를 보는데 낯익은 가게가 눈에 보였다. 회사 근처 서대문 통술집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60년 만에 폐업을 한다는 인터뷰가 내용 중에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25살 때 시작했다고 하니 이제 80대가 되셨나 보다. 코로나로 지난 2년간 임차료도 못 내어 가게를 정리하면서 빚잔치를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 허름한 가게의 하루 매출이 250만 원이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그 가게는 이제 멈출 때가 되었나 보다.


운명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운명을 피하고자 자신의 부모 곁을 떠났다고 여겼지만 결과적으로 길에서 만난 자신의 친부인 라이오스를 죽이고 그의 친모 이오카스테와 결혼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의 친부인 라이오스 왕 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라는 예언에 태어난 아들을 죽였다고 여겼지만 기어이 아들 손에 죽고 만다. 그리스에서 말하는 운명론이란 이처럼 ‘있는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다. 운명에 대해서는 이런 말도 있다. “운명을 느낀다는 것은 한 밤에 까마귀를 보려는 것과 같다. 보지는 못하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정해진 운명이 있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나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가 정해져 있을 것이니 운명을 안다고 한들 달라질 게 없을 것이고, 운명이 없다고 하면 내가 애쓰고 노력하는 만큼 거둘 수 있을 테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운명에 대해 밤에 까마귀 보는 것과 같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운명이란 없는 것 같지만 분명 느껴지는 것은 있다. 어떤 경우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때가 있고, 또 어떤 경우엔 노력에 비해 술술 풀리는 때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패턴이 늘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 잘 되다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고 안 되다가 잘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에 겸손할 이유가 있다. 아니 겸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되어가는데 나의 역할은 일부에 불과함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운명을 다루는 지혜는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알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다.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 들면 앞으로 나아가되 내 힘만으로 된 게 아니라는 마음을 내고 깜깜한 암흑이라 여겨지면 멈추고 축적해야 할 때임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의 출렁이는 파도를 잘 탈 수 있지 않을까. 수영은 물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물에 저항하면 할수록 물을 더 들이키게 되고 몸은 가라앉는 법이다. 코로나로 인해 회사 근처 60년 된 서대문 통술집이 문 닫는 것을 보며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떠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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