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사업단장일 때 채용했던 한 직원이 계약기간이 이번 달로 끝난 다기에 가기 전에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다른 직원과 교육 매니저까지 넷이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이 직원이 인상 깊었던 것은 힘든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태도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가 참 안타깝다. 여느 정규직원 이상으로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지만 단지 기간이 2년 되었다고 회사에서 내보내는 건 아이러니하다. IMF 이전에는 계약직이라는 말이 없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계약직원들의 계약기간은 5년이었고 이후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노동계에서 기껏 생각해 냈다는 게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하고 이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법으로 관철시킨 것이다. 정말 멍청하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기업은 사람을 채용하면 2년마다 내보내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만 더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그런 입장을 노동계의 주장으로 내세워 법안으로까지 통과시켰던 이는 정말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서 보면 아까운 계약직 직원들이 여럿 보인다.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것은 2년 계약 만료 후 1년이 경과하면 다시 채용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이처럼 당초 예상과는 다른 결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기업에도 현 제도가 정말 정착되어 계약기간 2년 중 1년이 경과하면 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 2년이 되면 가차 없이 내보내는 인사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계약직원들 대부분이 20-30대 청년들인데 참으로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규직원들이 계약직 직원이나 위촉직 보험설계사를 대하는 것을 보면 현대판 신분제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는 자신이 고용주처럼 행세를 한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기간이 좀 긴 계약직에 불과한데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니 계약직원도 회사에 대해 딱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더 이상의 기대도 않게 된다.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게 권장사항은 아니지만 나의 20-30대 시절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젊은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덜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 예전에는 부정적인 관점도 있었지만 요즘은 나도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실체가 없는 법인격의 회사를 생각하면 대표이사도 계약직에 불과하며 직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겨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의 감정에 소속감까지 요구할 건 아닌 것 같아서다. 이것도 내가 은퇴를 앞둬서 그런가 싶긴 하다.
하루는 딸아이의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말 같아 메모해 두었다. “인생의 비극은 내가 나를 책임지려 하지 않을 때부터 시작된다.”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요즘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것 같던데 스스로 깨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근래 들었던 말 가운데 상당한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회사와 개인의 관계도 그러하다.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생겨나는 착각이 회사가 나를 책임져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복지가 좋은 대기업일수록 회사가 나에게 주는 모든 혜택들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질 때가 있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를 나가야 할 때가 오면 그제야 회사라는 배경을 걷어 낸 자신이 참 초라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회사가 아무리 좋은 혜택을 주고 나를 책임져 준다고 해도 회사와 나의 관계를 독립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독립이 뭔가?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나를 책임지겠다는 자세이다. 그래야 인생의 비극을 초래하지 않는다. 그 직원에게 앞으로 뭐 할 거냐고 물으니 어디서든 꼭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물으면 특정한 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정규직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현 상황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